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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가을철 정기학술대회 세션 탐방 5 - 미디어 교환 시스템과 전지구적 문화산업 비판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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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가을철 정기학술대회 세션 탐방 5


 


 


미디어 교환 시스템과 전지구적 문화산업 비판 :
케이팝과 싸이 현상을 중심으로


 


 


박성우 (성균관대학교 미디어문화콘텐츠연구소 선임연구원)



이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 (2013,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칼리지)의 일부를 토대로 한 것임을 밝힙니다.


 


들어가며



현재의 디지털⋅글로벌(전지구적) 환경에서 ‘문화’와 ‘문화 산업’이라는 용어는 비교적 포괄적이자 적극적인 관점에서 적용되어 사용되고 있고, 특히 문화적 대상들 (cultural objects)의 존재, 규정, 이해에 대한 확장된 인식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더불어 이는 문화적 대상들의 ‘사회적 생명성과 그 형태(The social form of life)’(아파듀라이, 1986; 라쉬, 2012)라는 개념의 이해를 요하며, 이들의 삶의 경로 즉 이동 경로 (trajectories)와 연계되는 공간들과 구조들에서의 변화까지 광범위하게 포섭한다. 이 가운데 전지구적 문화 산업은 그 자체로 위상적(topological) 모습을 띄는데, 이는 들뢰즈⋅가타리의 ‘생성적 되기(becoming)’의 전형적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오늘날 전지구적, 혹은 글로벌 문화와 문화 산업은 경제적⋅문화적⋅교육적 대상의 생기론적 흐름 속에서 등장하는 다소 낯설면서도 익숙한 새로운 자본주의적 교환 질서의 중요성을 함께 부각시킨다. 이 글에선 우선 형상적(figural)이며 정조(情調)적(atmospheric)인 측면을 그 특징으로 하는 소위 전지구적 문화에 대하여 조명한다. 더불어 글로벌 문화 산업과 한국 대중음악 산업을 중심으로, 문화적 대상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소유, 교환 개념과 그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케이팝(K-Pop)의 사례를 중심으로, 문화적 대상(object)을 둘러싼 독특한 교환 개념이 어떻게 전통적 관점의 경제적 교환 대상들인 상품(commodity), 선물(gift)과 대비되며 구체화 되었는지, 그리고 이는 현 시기 대중문화와 사회 전반에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살펴본다.



변화하는 사회, 그리고 문화


‘문화는 흥분제에서 안정제로, 근대 혁명의 무기고에서


결과물을 보존하는 저장고로 탈바꿈했다’. (바우만, 2013)


 


현재 전 세계 곳곳을 파고들며 유동하는 문화 혹은 문화적 현상들은 여전히 재현적 (representational)이지만, 많은 영역들에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른바 글로벌 문화 현상이라 칭해지길 바라는 일련의 전지구적 흐름은 재현, 상징의 영역에 놓여 있는 각 개별 대상보다는, 대상 (objects)들의 흐름이 야기하는 시스템으로 급격히 그 관심을 옮기고 있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 문화 산업은 이제 재현의 논리보다는 ‘사물-존재(things)’ 그 자체, 혹은 ‘생성(becoming)’의 논리를 본질적 우위에서 고려한다. 이는 동시에 매우 위상적(topological)이며, 이의 분석을 위한 사회 문화적 위상 접근법을 진지하게 요구한다. 미디어 역시 대상의 재현과 관련한 도구적 장치(register)라기 보다는 대상들의 흐름 생성을 추동하는 환경(atmosphere)으로 빠르게 포섭된다. 어느덧 미디어가 리얼리티를 구성하고 있고, 소셜 미디어는 이름 자체가 말해주듯이 스스로의 사회적 생명성을 담보로 수용자 및 그 환경적 특징들과 공진화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문화적 소비자들은 더 이상 고전적 관점의 주체-객체 관계에 위치하지 않고, 상호주체적(inter-subjective)인 새로운 미디어 교환 프로세스 속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떠밀려 들어온 형국이며, 문화적 대상들의 변형가능적(transformative) 잠재력은 문화적 대상의 사회적 생명성, 혹은 사회적 삶의 형태에서 감응적으로 현현되어진다. 빅데이터, 혹은 메타데이터 등을 통해 기술적 대상(technological object)의 사회적 삶의 형태와 생명성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진전하는 것에 발맞추어, 문화적 대상(cultural object)에 대해서도 그 사회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글로벌 문화 흐름 속에서 상상적 대상(imaginary objects)이 실질적 형태를 가진, 구체성을 띤 연속적 개체들로 생성된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지’나 ‘중단’ 대신 ‘프로젝트’와 ‘흐름’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글로벌 문화의 이러한 측면은 디지털 기술의 일상화와 더불어 우리의 생활세계를 전면적으로 압박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일찍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제시했던 전통적 개념의 ‘문화’ 그리고 ‘문화 산업’, 그리고 심지어는, 마르크스의 상품(commodity) 개념 및 마르셀 모스의 선물(gift) 과도 구분되는 무언가에 대한 매우 의미 있는 차이를 현 시기 전지구적 문화와 문화 산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전지구적 문화는 그 기본적 정의에서부터 고정적, 지형학적, 지정학적 흐름에 우선을 둔 문화론적 접근과 쉽게 구분된다. 무엇보다 상호주체적, 상호환경적 조우(encounter)를 존재론적 특성으로 가지는 글로벌 문화의 주, 객체들은 집단적, 기술적 상상에 의해 모두 쉽게 과장되어진다. 라쉬 (2012)가 이야기 한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y)’은 어느덧 글로벌 문화와 글로벌 문화산업에 있어 핵심적인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소위 글로벌 문화와 문화 산업은 더욱 형상적, 이미지적이며 감응적, 몰입적인 특성을 참여, 수행, 연행, 창조의 이미지와 함께 부각시키고 있다. 케이팝, 소셜 미디어, TGIF(Twitter, Google, IPhone, Facebook) 열풍 등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새로운 글로벌 문화 현상들에서 그 공통적 모습을 발견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라쉬 (2012)에 의하면 ‘사회적 상상’은 자기 구성적인 집단적, 기술적 상상(력)이며 기능 (function)의 범위를 쉽게 넘어서 의미론적 과잉을 통해 사회적으로 작동한다. 이는 바디우나 지젝이 바라본 현실계(the real)과 상징계(the symbolic)의 불협화음이라는 현 시기 전지구적 문화 진단을 뛰어 넘는다. 즉 라쉬가 바라본 ‘사회적 상상’은 결국 집단적, 기술적 경험, 체험이 꿈의 생성과 결합된다는 점에서 바디우나 지젝과의 입장 차이는 분명해 보이며, 오히려 이 문제는 꿈, 욕망, 리비도의 생성이 산업화되고 신체화되어 환영적으로 영속한다는 점에서 벤야민, 스티글러, 슬로터다이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문제는 이러한 상상적 과잉이 급격히 시스템화 한다는 점인데, 루만 (2012)의 표현처럼 이 또한 스스로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구조화’이므로 더욱 위험할 수 있다. 라쉬는 이러한 상상(the imaginary)의 구조적 결합이 일상에서의 ‘의미론적 교환(semantic exchange)’을 가능케 하며, 새로운 형태의 상품인 정보나 이미지의 교환을 통해 주도적으로 이끌어진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라쉬의 주장 역시 거시적 사회 구조라는 전제 아래에선 상당부분 문화 지형학적 매핑 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한계는 있다. 반면 시몽동과 스티글러가 이야기한 ‘준 안정적 에너지 변환론(meta-stabilised transduction)’을 결합하면, 이러한 자기 구성적 형상들이 사회적 상상 및 특정한 공간성들과 함께 모두 공진화한다는 흐름까지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특성은 언제나 일시적이며, 특정 공간이나 구조 아래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공간이자 환경으로 무한 확장된다는 점에서 매우 관계 위상적이면서 환영적이다.


 


21세기 들어서, 사회적 상상은 꿈의 사회적 생산으로 구조화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는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 결합이 주된 동인이 되고 있으며, 그 점에서 사회적 상상은 곧 기술적 상상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통합적인 인간-기술적 시스템 여기서 기술적이라는 의미는 ‘technological’이 아니라 시몽동이 이야기한 ‘technical’을 의미한다.



 속에 결합되어 오고 있다. 이는 현시점 압도적 성장세인 유비퀴터스 미디어, 과학 기술과 컨슈머 브랜드 자본주의의 결과만으로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적어도 루만 (2012)이 말한 ‘사회 시스템이 곧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되어간다’는 사실은 더 이상 부인하기 힘들다. 또한 이러한 상상(력)은 ‘끝이 없는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위상학적, 관계적 문화 진단과 다시 연결되어진다. 벤야민은 일찍이 ‘영원한 새로움(eternal newests, 1991)’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근대성이라는 환각적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이 맥락에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디자인, 예술 그리고 테크놀로지는 어느덧 한 몸이 되어 중단 없는 집단 상상을 만들어낸다. 전지구적 기술, 문화적 대상들은 외양과 스타일을 통해 우리의 몸과 의사소통하며 우리는 곧 이러한 상상적 교환 시스템에 더욱 의존한다. 이 관계는 스티글러 (2011)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가져와 지금의 대중문화 소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파르마콘’처럼 매우 약리학(pharmacology)적, 즉 치유적이며 동시에 더욱 의존적이 되는 자기 파괴적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라쉬가 적절히 언급했듯이, 소위 글로벌 문화라는 차별성은 ‘이미지 중심의 가상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2012: 277)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적 대상들, 아니 범위의 대상들은 위상학적 관계망 속에서 브랜드의 고유한 가치 규정과 함께 흐름을 만들며 끝없이 흘러 다닌다. 


글로벌 문화 산업에서 ‘사회적 상상’은 라쉬(2012)가 이야기한 대로 기표(sign signifier) 뿐 아니라 기의에서의 비 물질성까지 함께 물신화(reification)한다는 점에서 또한 중요하다. 예를 들면 애플이나 삼성 디지털 기기의 고유한 외양, 색깔, 소리 등은 아이폰이나 갤럭시와 같은 이들 브랜드들과 대중적 인식의 영역에 함께 자리한다. 즉 브랜드로 대표되는 위상적 관계망은 언제나 상품들과 관련 맺고, 이들의 가상적(virtual) 물질성을 더욱 확대, 재생산한다. 일반적으로 세계 어느 곳의 상표권법(trademark law)을 보더라도 상품별 특성은 반드시 달라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실제 법적 판단을 위한 배제의 원리일 따름이며, 가치의 원천은 독창성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상품 외부나 상상의 내부 아니면 둘 사이에 그 독창적 가치가 존재하도록 한다는 글로벌 문화 산업의 논리는 라쉬의 설명처럼 아주 유의미하다. 실제 대중들이 구체적 차이를 대할 때, 동시에 가상적 외부를 경험한다는 점은 일찍이 맥루한(1997)에 의해서도 ‘외재화(outtering)’의 개념으로 설명된 바 있다.


 


결국, 전지구적 문화는 대상의 생산과 함께 그 이미지와 흐름이라는 관계성을 팔기 때문에, 아파듀라이(1996)가 언급한 ‘문화적 대상의 사회적 삶과 생명성’이라는 새로운 명제의 깊은 숙고를 요구한다. 또한, 경제적 교환시스템에선 상품적 성격인 추상적인 동일성과 선물의 특성인 구체적이고 고유한, 신심어린 성격이 교환 가치의 면에서 함께 발생한다. 그래서 글로벌 문화와 그 대상은 고유성 기반 예술 작품도, 동일성 기반 포디즘적 상품도 아닌, 또 다른 방식의 교환 시스템을 수반한다. 즉 선물도 아니고 상품도 아닌 그 무엇으로 지금의 대중문화 대상(object)을 정의할 수 있다.



전지구적 문화 산업의 특성


 


문화를 산업적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처음 개념화 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이후 시대의 문화 산업과 지금의 소위 전지구적 문화 산업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가장 핵심적으로는, 동일성의 원리에서 차이의 원리로의 변화이다. 문화적 상품은 동일성에 기반하여 자본 축적에 기여한다는 생각은 아도르노아 호르크하이머의 문화 상품에 대한 전형적 접근이었다. 이후 리와 리푸마(lee & lipuma 2002)는 문화적 실재는 자신만의 다이나믹을 가지고 이를 통해 가치가 생성된다는 주장을 전개했고, 라쉬와 루리(2007)에 이르러 글로벌 문화 산업의 환경에서 문화적 상품은 획일적, 정태적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 실재는 정형화 되지 않게 순환하며 글로벌한 차이를 재생산하는 구조라는 주장이 주목 받는다. 즉 생산과 소비, 흐름 모두가 차이 생성의 과정이다. 과거 포드즘적 노동 집약적 동일성 생산에서 지금은 노동 조건에서의 ‘프리캐리엇’을 양산하는 포스트 포디즘적 디자인 기반 ‘감성 노동’(하트, 1999)을 통한 차이를 생산한다.


 


브랜드, 사물화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관심은 철학, 미학 그리고 특히 문화 이론과 관련된 오래된 주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재현의 문제를 기본적으로 매개(mediation)로 보았지만, 글로벌 문화 산업에선 더 이상 재현의 문제를 핵심에 두지 않고, 대신 사물(things)과 사물화(thingification) 과정을 언제나 우선으로 인식한다. 미디어는 여전히 재현의 한 축으로 의미 생산의 측면을 다루지만, 점차 미디어 자체도 사물(thing)과 환경(atmosphere)이 되면서 오퍼레이션, 즉 해석이 아닌 네비게이션의 영역으로 본격 진입하게 된다. 즉 시몽동이 지적한 밀리유 개념에서 주체, 객체 그리고 공간 모두는 서로 영향을 미치며 공진화하듯이 미디어가 사물(thing)로 그리고 사물(thing)이 미디어 혹은 환경 생태계로 사용자와 함께 관계망을 고리로 공진화하는 것이다. 이를 스티글러, 파리시 등은 '디지털 밀리유'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유투브, 페이스북 생태계 뿐 아니라, 일상의 간단한 예에서, 영화가 컴퓨터 게임이 되거나 브랜드가 자체 공간을 공항, 터미널 등에 조성하는 경우, 스마트폰 디바이스가 할인 쿠폰이 되거나, 만화 캐릭터가 장식품이나 옷이 되고, 음악이 갑자기 승강기에서 울릴 때 등도 모두 포함될 수 있다.


 


문화, 특히 대중문화는 더 이상 초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주장처럼 상부구조에 머무른다고 이해하긴 어려워졌다. 이는 어떤 대상을 이전의 감각 지각에 의해, 유일성의 성격과 함께 ‘재현’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아파듀라이(1986)도 언급했듯이 사물이 그들 스스로의 사회적 삶의 형태를 가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결국 글로벌 문화의 층화는 몰입적이고 묘사적이며 이는 문화적 형태의 위상적 관계성과 충분히 결합된다.


 


 


<표 1> 상품과 브랜드의 차이 : 라쉬와 루리(2007)를 정리



상품 (Commodity)


브랜드 (Brand)

production of single, discrete, fixed product production of source range of products
no history with history
no relationship between products relationship between products
no memory with memory
alike, differentiated by price not alike, differentiated by other brands
value making from identity value making from difference
dead alive (retention and protention) (cf Husserl 1964)
pre-given (mechanistic) organism (transmutation with memory) (cf Simondon 1992; Stiegler 2009)


 


지형학에서 위상학으로


 


전술했듯이 글로벌 문화 산업은 개체들을 ‘생성되는 과정’으로 간주한다. 위상학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생성(becoming)의 측면을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탈형태화, 재형태화, 변형형태화 (deformation, reformation, transformation)의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글로벌 문화에 대한 이러한 형상적이고 감응적 수용 형태는 위상학이 문화 산업적 적용 속에 보편적으로 녹아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동안 많은 한류 수용자 연구에서도 충분히 드러났듯이 무엇보다 이들의 질적, 반복적 소비는 글로벌 문화 소비의 이러한 새로운 양태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다. 한편, 지금까지 위상학적 문화 연구 성과를 직,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었던 많은 사상가들의 범주엔 아파듀라이, 드세르토, 카스텔, 라투르와 키틀러 등을 포함할 수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큰 틀에서 재현 중심적 사고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즉 공간(space)을 둘러싼 의미 재생산 과정을, 주어진(pre-given) 문화적 지형도 상에서 비교적 열린, 연접적 매핑(conjunctive mapping)의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문화 산업적 위상성은 공간의 사고를 기본적으로, ‘밀리유’적 무한 확장의 틀과 전 방위적 관계 속에서 한다는 근원적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새로운 공간 개념인 밀리유의 이해는 더욱 필수적이 된다. 밀리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했던 최초의 인물인 시몽동(1992)의 사고를 통해 정리하자면 주체, 객체, 공간 모두가 공진화하는 ‘집단적 개체화(collective individuation)’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위상성은 외양에 있어, 지속적 변화와 탈형태성(deformation)을 그 특징으로 가진다. 이는 일찍이 벤야민이 ‘영원한 새로움’(1991)으로 근대성을 ‘지옥의 영원성’이라는 관계망으로 분석해 낸 것과 다시금 상응하게 된다.



전지구적 문화 산업 비판


 


‘억압받는 자들의 역사는 불연속성이다. 역사의 연속성은 억압하는 자들의 연속성이다.’ (벤야민, 2009)


전지구적 문화 산업은 자본 축적의 부분과 연관 지어 보면, 가상의 통치기구를 통한 지배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문화 수용의 과정은 문화적, 집단 기억을 통한 ‘초-개체화 과정(trans-individuation)’과 관련된다. 이 용어는 시몽동이 이야기 한 ‘초개별 주체(trans-individual)’ 와 ‘개체화 과정(individuation)’을 스티글러가 발전시킨 것으로, 이는 상상에 기반 한 통시적인 주체의 공시적 집단화란 의미에서 주류 심리학과 사회학에서 유래한 고전적 관점의 사회화, 개별화 등과도 다르며 오히려 기술적 개체화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겠다. 또한 그룹을 형성하는 개인들과 이들의 관계로 집단이 구성된다는 의미의 ‘사이-개체화(inter-individual)’나 특정 집단이 개인들을 구조화한다는 의미의 ‘내부-개체화(intra-individual)’와도 다르다. 시몽동에 의하면 개별 주체는 정신적-사회적 ‘개체화 과정’을 거쳐 등장한다. 여기에 스티글러가 ‘기술적 리텐션’(저장 혹은 기억, retention)을 추가하여 설명한 이러한 새로운 초개별 주체화 과정에서는 ‘집단적 현실(collective reality)’이 단순히 이미 주어진 개인적 프시케(영혼)의 집합도 아니며 종들의 ‘순수한 사회적(purely social)’ 형태도 아닌 모호한 것이 된다. 이는 곧 ‘기술적이며 사회적 되기(social technological becoming)’의 하나인데, 요약하자면 파편적으로 산재했던, 구분되었던 분절적 역사를 집단적 연결망으로 산업적으로 개체화시키며 등장하는 환영적 주체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므로 글로벌 문화수용 과정에서 ‘초개별 주체(transindividual)’란 통시적인 집단 개체화 과정을 통해 ‘나’들이 공시적 ‘초-개체화’ 과정의 ‘우리’로 재구성되는데 있어서의 주체이자 객체 그리고 환경 그 자체이며, 다른 의미에선 벤야민이 이야기한 ‘정지, 중단의 변증법’이 결코 진행될 수 없도록 기여하는 문화 산업의 핵심 참여자이자 수용자이기도 하다.



창조 산업론의 재고


 


영국, 그리고 지금의 한국 하면 떠오르는 소위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은 많은 부분 대중의 빈곤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 삶에서의 ‘종결(termination)’에 대한 인식의 결핍을 야기한다는 점을 통해서도 두드러진다. 그런 점에서 스티글러(2011)의 경우 창조산업 자체를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으로까지 보았는데, 여기서 그가 이야기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맑스의 그것과는 다르다. 즉 직접적인 노동 계급, 무산 계급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화하고 실행할 지식(savoir-faire, savoir-vivre)을 빼앗긴 사람들 모두를 칭한다. 그러므로 스티글러에게 맑스적 노동 계급은 역사상 프롤레타리아화 된 현실 속에 등장한 최초의 집단이라는 인식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빈곤화 과정이나, 스티글러적 ‘프롤레탈리아화’ 모두 문화적 주체가 중단 (interruption)에 대한 지식 혹은 인지 과정을 빼앗기는 것이 그 핵심이라는 점이다. 사실 프로이드가 개인적 차원에서 부드러운 연접 과정에서의 일시적 중단 현상을 통해 ‘성격(characteristics)’ 이라는 개념을 준안정적 일반화로 규정한 것처럼, 예술과 문화적 대상 역시 본질적으로는 ‘에두름(enclosing)’ 혹은 시공간적 정신적, 집단적 개체화(collective individuation)된 어떤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에 근거하면 창조 산업이 야기하는 새로운 빈곤층은, 산업화된 문화적 기구의 입장에선 중단을 위한 대중들의 인지 과정이나 지식이 매우 성공적으로 제거되어 집단 개체화되어진, 그래서 그들에겐 더욱 보편화되어야 할 인간 대상이 된다.


 


사실 대중문화는 집단 기억의 공간화(spatilaity)이다. 그런데 오늘날 집단 기억은 더욱 산업적, 기술적 기억, 즉 ‘제 3의 리텐션’(스티글러, 2011)의 과정에 의해 고양되고 있다. 전지구적 문화 생산 양식은 중단의 행위를 금하고 환경적 몰입적 소비를 야기한다. 이는 결코 마무리를 허용치 않는 것으로 타르드(1903)가 언급한 ‘사회적 최면(social hynoptic)’ 상태의 유지에 그 핵심을 두고 있다. 익숙한 디지털 공간들, 예를 들어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나 심지어 한류 유통 온라인 사이트들 모두 일정정도 이러한 환영적 구조에 의존한다. 즉 무한히 제공되는 독특한 미디어 교환 구조에서 수용자들에게 주도적 실행자의 역할을 맡기는 듯한 구조이다. 창조문화와 산업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미술관, 박물관, 극장의 역할과 기능 역시 급격히 이러한 원리의 교육, 체험, 참여 등으로 핵심 업무가 변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심지어 ‘힐링’이나 ‘케어’로 작동하는 것조차도 필연적으로 더 심한 의존적 독성을 유발시킨다는 점은 굳이 병리학이나 약리학적 정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중문화 공간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이는 폭넓은 문화적 비정상성에 의존하는 문화 산업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극단적 실천, 개입 혹은 참여형 문화 시스템에서 두드러지며, 지속적인 환영(hallucination)을 초래하면서, 동시에 치명적 질병에의 의존성을 높이는 결과를 야기한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양면성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이미 ‘파르마콘(parmakon)’으로 널리 소개되어 온 것처럼, 현재의 전지구적 문화 산업 역시 끝없는 케어의 원리와 함께 일종의 대중 문화적 도핑, 혹은 문화적 성형시술을 주, 객체, 공간 모두에 강요한다. 일반적으로 도핑과 성형술은 신체에 주어진 가능치를 초과하여 실행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마약성으로도 잘 알려진다. 그러한 점에서 불가능한 종결을 위해 사회 문화적 조건은, 마치 슬로터다이크가 이해한 불가능한 엔클로저(enclosure)의 단계처럼 계속 미뤄진다. 사회적 주체는 아도르노가 이야기한 ‘일체적 자율성(integral freedom)’의 원칙과 함께, 디지털 밀리유에서 나르시즘적 반복으로 도취되며, 그러면서 어떠한 목표 달성의 감각은 항상 ‘사회적 상상’(라쉬, 2012)으로 대체되고 만다. 여기서 대중문화에 대한 사회적 의존성이 더욱 커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


 


글로벌 문화와 문화 산업에선 비교적 최근까지 크게 존재했던 표준화(standardisation)와 차이(difference) 사이의 긴장마저 자연스레 소멸한다. 이것은 상품의 동종성과 차이의 이질성 사이의 결합 때문인데, 마찬가지로, 차이 자체가 산업적 목적에 의해 계속 새롭게 정의되어 진다. 글로벌 문화 산업은 이러한 방식의 문화 전달과 습득을 위해 새로운 미디어 교환 시스템 교환을 적극 활용하고 강화해간다. 어디선가 익숙한듯하지만, 낯선 이 미디어 교환 시스템은 그렇듯 산업화된 상품, 선물 교환 시스템이자 전지구적 문화 흐름의 새로운 징후라고 볼 수 있다. 



문화적 대상의 사회적 삶의 형태


 


아감벤, 푸코 등이 언급한 현대적 자본주의 사회 질서에서의 생명성 개념은 이젠 더 이상 생물학적 생명체만을 그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특히 밀리유에 대한 고민과 함께 공간이 주체와 더불어 공진화 한다는 측면을 고려하면, 문화적 대상 역시 사회적 삶의 형태를 가진다는 오래된 아파듀라이의 견해를 다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의 설명을 위해 필요한 개념은 상품 거래도, 선물 거래도 아닌 미디어, (엄밀히 말하자면 미디어적인) 교환 시스템이다. ‘미디어(적) 교환 시스템’(박성우, 2013)은 라쉬가 그의 책 <글로벌 문화 산업>(2007)에서 문제 제기한 개념을 발전시킨 것으로, 기본적으로, 오래된 개념인 ‘선물 교환(gift exchange)’ 시스템의 산업화와 그 흐름을 같이 한다. 일찍이 마르셀 모스가 바라본 선물 거래 시스템에서 핵심적 기제는 다름 아닌 의무(obligation)와 도덕 경제였다. 글로벌 문화 산업에선 이 의무에 대한 부분이 일견 산업적으로 제거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 대신 시스템은 개별적 상품을 상품들의 흐름으로 대체하여 포섭하며 주의(attention), 돌봄(care) 그리고 중독성(toxic)을 동반하도록 한다. 그 결과, 수용자들이 스스로에게 신심어린(sincere), 기술적인(technical) 선물 거래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다고 인식하도록 강제된다. 이는 클리포드 기어츠(1983)가 말한 ‘두꺼운 기술(thick description)’과 같은 개체화 과정이 문화적 ‘깊은 공간’에서 비재현적, 신체적 개입이나 실천, 경험을 통해 ‘초-개체화(transindividuation)’ 과정으로 전면화 된다는 특징을 나타낸다.


흐름을 포섭한다는 것은 바로 중단(interruption)을 불가하게 만드는 것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문화 수용자들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교환 시스템을 통해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약한 연계(weak tie)’ 정도의 관계성이 형성된다. 이러한 교환 시스템의 기반으로 작용하는 개념이기도 한, 문화적 대상이 삶의 형태를 가진다는 점의 전제로는 ‘생기적, 감정적 존재 (thing-in-soul)의 산업화’를 들 수 있다. 미디어, 문화적 대상에 사회성을 부여한 이 용어는 이미 모두에게 친숙한 내용이기도 한, 욘사마, 비의 모든 것이 일본 중년 여성에서 소중하게 다뤄지는 특징적인 수용 양식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발터 벤야민 역시, 칸트를 비판하며 예술적 경험을 실증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이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이렇게 결합한 새로운 교환 시스템에서 미디어는 현실(reality)까지 쉽게 변화시키는데, 특히 소셜 미디어의 경우 그 플랫폼 자체가 감응적(immersive)이라는 특성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미디어 교환 시스템의 핵심은 초월성(transcendental)과 실증성(empirical)의 동시성(double)이며, 이는 또한 매우 신자유주의적이다. 푸코가 이야기한 대로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사회적 삶의 자본주의적 포섭과 관계한다.



글로벌 문화 산업과 미디어 교환 시스템 (Media Exchange)


 


인터넷과 같은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킹 공간에서 수용자들은 행위는 반복적인 교환 행위에서 주고 (언급하기) 받기와 작동, 운항(operation, navigation)에 관한 것이 사고 팔기(계약하기)와 시청(감상) 보다 현저히 두드러진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습관적으로 ‘좋아요’와 ‘공유하기’를 클릭하며 심지어는 그 공간들에서 의무화된 기부까지 하면서 그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한다. 또한 이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파일들조차 계속 다운로드하는 습관성과 함께, 이러한 디지털 밀리유에서 스스로의 외양(self-appearance) 꾸미기에도 더욱 몰두한다. 선물 획득을 통해 야기된 의무의 감각은 도덕과 경제의 결합으로부터 고양된 ‘과도한 행동성(hyperactivity)’과 함께 흘러 다닌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과잉 행동성은 역시 약리학적 의존성으로 쉽게 전이되어 (준)환각적 상태에서 끝없는 활동을 욕망하는 상상을 만든다. 이는 일종의 문화적 도핑, 문화적 성형술의 지속 과정이며, 이는 대중들을 하여금 의도적이고 과장되게, 계산과 합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유한 경험을 추동하도록 만든다.


 


다른 측면에서는, 벤야민이 언급한 ‘아우라’의 산업화를 들 수 있다. 즉 기존의 ‘공간(space)’ 문제를 넘어 디지털 밀리유에서는 더욱 폭력적으로 산업화된 대중 문화적 선물 거래가 전면화 된다. 밀리유는 주체, 객체, 공간 모두가 공진화한다는 개념으로 그런 점에서 밀리유는 일종의 메타 스페이스이다. 벤야민이 <폭력비판을 위하여>(2009)에서 언급한 세 가지 메타 ‘폭력’적 층위들이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전지구적 문화 산업의 공간은, 공간을 둘러싸는(surrounding) 플레이스적 공간, 공간을 분류(classifying)하는 스페이스적 공간, 그리고 자라나고 생성하는(constructing)는 의미의 밀리유적 공간으로 나눠볼 수 있다. 벤야민(1999;214)은 또한, ‘진정성(authenticity)의 영역은 기술적인 것의 외부이다’라며, 기술적 복제, 재생산, 재현과 아우라의 공간적 독립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바 있다. 즉 아우라는 언제나 다시 개별화되어질 수 있으며 이는 전지구적 측면에의 문화적 환경(atmosphere)에서 깊이와 위상학적 공간적 구조를 간단히 적용하는 것에 의해서도 충분히 산업화되어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어찌 보면 벤야민에게 기술복제 시대는 예술과 아우라가 소멸하는 안타까운 시기라기보다는 산업적 공간, 특히 밀리유적 공간에 대한 두려움의 시기로 여겨진다. 이러한 ‘포스트모던 아우라’는 반복적인 선물 거래를 통한 가시성(visibility), 케어, 주의(attention)의 특징들을 거쳐 소비자들의 신체에 차이성이라는 환영으로 축적된다.


 


비록 모스는 ‘선물’에는 어떠한 보편성(universality)도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선물로 인식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또한 이는 미디어 교환 시스템의 핵심적 구동원리이기도 하다. 첫째, 가격표의 제거, 둘째, 정성스런 포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물질적 대상을 싸구려 공짜 상품이나 공공재와 구분하기 위한 개인적 가치의 추가이다. 미디어 교환 시스템을 통해 이를 살펴보면, 가격표를 제거하는 과정은 ‘기술적, 민첩한 공짜 상품’의 보편화와 상응한다. 그리고 포장의 과정은 ‘순수성, 신실함’의 회복과 연관되며, 개인적 가치의 부가는 ‘고유성’의 형태와 다시 관련된다. 한류의 현상을 다소 거칠게라도 구분해 보면 ‘가격표의 제거’ 단계에서 잘 조응한 케이스는 중화권을 위시한 동아시아에서의 소위 ‘어둠의 경로’를 통해 증폭된 한류 콘텐츠 열풍, ‘순수성의 포장’에서 뜨겁게 반응한 케이스는 일본, 대만 중심의 욘사마, 비 등 한류 스타들에 대한 열풍, 마지막으로 ‘개인적 가치’ 부과는 글로벌 디지털 환경, 대표적으로 유투브에서의 강남스타일적 패러디 제작 열풍과 일정정도 그 궤를 함께 한다. 


 


‘사물의 사회적 삶의 형태와 생명성’을 이야기 했던 아파듀라이의 주장을 이러한 산업화된 선물 거래, 즉 미디어 교환 시스템과 결부시켜 따라가 보면 ‘기술적, 신실한 상품이자 선물’은 ‘느슨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일종의 ‘기술적 관심’과 연결되어 흐름을 생성하는 ‘국면 전환(phase-shifts)’ 과정을 통해 꾸준히 그 사회적 생명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는 또한 스티글러가 이야기 한 정신적, 집단적, 기술적 기억과 외재화를 통한 초-개체화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스스로 생성하고 공진화하는 디지털 밀리유에서의 한류 콘텐츠는 전형적인 이 경우에 해당한다. 아직도, 유투브와 주요 인터넷 공유 공간에서 한류 콘텐츠는 대부분 프리이지만 ‘꽤 정성스런 거의 무료인 선물’이라는 인식이다. 단순히 말해, 이러한 미디어 교환은 1차적으로 <메트로>와 같은 무료 신문의 기술적 습득 양식과 유사하다. 이 신문을 원할 경우, 우리들은 기술적으로 제 시간에 특정 장소, 예를 들면 시청 앞 지하철 역에 서로 간 암묵적으로나마 동의된 시간에 맞추어 나갈 필요가 있다. 여기에 기술적 요구나 ‘개인적 지능’, 예를 들어 신속함, 영리함, 적재적소성 혹은 임기응변을 미디어 교환에서의 ‘보상’으로 수반한다는 점에서, 또 이것이 개인적이면서 집단적 ‘의식’ (attention)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미디어 교환 시스템은 풍부함과 함께 직접적인 경제적 의무를 산업적으로 제거시키려 한다. 왜냐면 시몽동이 이야기한 것처럼, ’프로텐션‘은 미디어 교환에서 또 다른 ‘주기, 보상’의 과정으로 치환되며, 이는 글로벌 미디어 문화 산업에서 이미 일반적인 경영원리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류 콘텐츠의 경우 상품의 구성과 탈형태화/재형태화에 용이한 열린, 개방된, 유연한 구조의 측면에서 기술적, 소중한 선물과 미디어 교환 시스템의 또 다른 특징적인 특징인 ‘형상성(figural)’의 특성도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특성들은 고유한 대상의 위상학적 ‘국면 전환’과 사회적 생명성의 유지를 더욱 깊게 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한류 문화 상품의 순환 과정은 ‘소중한 공짜 선물’의 개념에 상당부분 기반하며, 동시에 정신적, 집단적, 기술적 주의를 요하는 꽤 복잡한 문화 상품으로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미디어 교환 시스템은 초월성(transcendental)과 실증성(empirical)이 어느 정도 결합한 형태로, 문화적 대상의 사회적 삶과 생명성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적 문화 상품 교환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동안 서로 격리시키려 그토록 노력해왔던 도덕, 윤리와 경제적 거래를 산업적으로 결합시켰다는 점은, 오랫동안 무시당해온 ‘공유권(the commons)’에 대한 관심을 일면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오히려 산업화된 선물거래의 중단 없는 흐름이 주의, 케어 그리고 독성, 의존을 더 많이 불러일으키는 파르마콘적 약리적 작용 과정에서 아직은 그 폐혜만 더욱 극심해 진다.


 


 


<표 2> 미디어 교환 시스템(박성우, 2013)




 


케이스 : 케이팝의 문화적 대상으로서의 사회적 생명성과 미디어 교환 가치


 


2013년 5월 15일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가뿐히 유투브 조회수 15억 뷰라는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다. 주류 언론에 의해 대부분 아름답게 포장된 한국 가수의 이 대단한 업적은 글로벌 문화 산업과 미디어 교환 시스템에 관해 적어도 몇 가지를 의미를 던져준다.


 




 


첫째, 이 뮤직 비디오의 유투브적 소비는 미디어 교환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수용자의 멀티 센싱 경험으로 두드러졌다. 오디오 비쥬얼리티는 소비에서 몰입형, 참여적 환경에 집중도록 하였고, 이는 적어도 감상의 관점에서 쉽게 빠져나오게 했다. 싸이는 전 세계 방송 프로그램에서 마치 댄스 강사처럼 동작을 꾸준히 반복 시연했다. 필자가 진행한 여러 인터뷰들을 보더라도, 이 뮤직비디오의 오리지날, 혹은 2차적 콘텐츠를 수십, 수백, 아니 수천 번씩 봤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이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고 한 사람들로써 혹자는 패러디물을 포함한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는 전형적 문화 콘텐츠 감상의 목적을 넘는 것이 분명했다. 또한 타르드가 20세기 초에 이미 주장했던 ‘집단적 바이러스 모방과 적용’(타르드, 1903)의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전지구적 소비자의 디지털 밀리유에서의 공간 위상적 관계의 유사성, 그리고 미디어 교환 대상의 변형적 특성이 사용자들과 함께 시의 적절하게 반응했다는 점이 컸었다. 글로벌 문화산업은 기본적으로 수행, 연행적 측면을 강조하는데 이는 고객들로 하여금 공유하면서 무엇인가를 함께 하게 하도록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문화 산업은 이러한 대상의 사회적 생명성을 위해, 그리고 소비자의 주체성, 창조성, 자유의지라는 환영을 패키징 하기 위해 스토리 라인, 댄스 스킬, 액션 포즈, 제작 스킬 등을 적절히 노출한다. 예를 들어 유투브가 LA, 런던, 동경에 마련하여 개방한 유투브 오픈 스튜디오 역시 그러한 로직을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강남 스타일의 경우에도 사운드나 가사의 기억보다는 댄스와 이미지의 전이가 그 핵심이었다. 이러한 환영은 또한 파르마콘적 행동 과잉으로 전이되는데 이는 심리적 혹은 병리적 조우로서, 대중들로 하여금 감염적 흐름에서 지속적으로 무엇을 실행하게 한다. 이러한 활동성은 아렌트가 이야기한 ‘능동적 삶’이나 역사적인 수용자 연구에서의 ‘능동적 수용자(active audience)’와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즉, 느슨하지만 독립적으로 연계된 집단 개체화의 공간인 디지털 밀리유에서는 타르드가 말한 ‘모방적 기풍(imitational ethos, 1903)’이 더욱 강화된다. 귀엽고 섹시하고 우람한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이 예술적, 아크로바틱적 영역에 머물렀다면 뚱뚱하고 재밌고 인상 좋은 싸이는, 실제 그의 후속 곡 제목 역시 젠틀맨이었듯이, 디지털 밀리유의 일상 공간으로 쉽게 밀고 들어왔다. 이는 신체적, 형이상학적 침투로 메인스트림이 오늘날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이 뮤직 비디오는 탈형태화, 재형태화를 용이하게 하도록 기술적, 소중한 선물로써 포지션하여 실질적 저작권 개념에서 거의 완전히 자유롭게 기능하도록 설정되었다. 이는 사실 엄청난 패러다임 전환이자 전지구적 문화 산업 흐름의 힘, 특히 구글과 싸이의 글로벌 소속사인 스쿠터 브라운 그룹이 메인스트림 음악 산업에도 산업적으로 더욱 침투하기 시작한 징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카피라이트 프리 개념은 크리스 앤더슨(2009)이 적절히 이야기했듯이, 사실 200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가장 특징적인 전지구적 문화 산업의 특성으로 등장하게 된다. 전형적 징후로는 불법 복제와 관련한 법적 다툼의 감소(논란의 감소와는 다름), 폭넓은 문화 산업에서 인수 합병의 증가를 들 수 있다. 대신 강화되고 있는 새 흐름을 보면 TV 콘텐츠 포맷 거래, 전지구적 교육 문화 이주가 특징적인 산업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위상학적 문화 산업 국면 전환의 시기 이후에 특히 두드러진다. 특히 전지구적 문화 산업에서 프로그램 포맷 거래는 ‘탈형태화’를 통한 위상학적 문화 흐름의 컨셉이 이미 어느정도 전지구적 수용자들에게 익숙해졌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 대중 문화 섹터의 경우 이처럼, 복제가 산업화되는 예기치 못했던 국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도적인 문화 생산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대표적 방송 프로그램 표절 시비 국가(물런 아직도 그러하지만)에서 감히 창조산업을 주도한다는 평가를 끌어내기도 하는 국가로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폭넓은 관점에서 이는 결국 자본주의적 기본 질서인 상품권, 저작권이 축소되는 것이다.


 


강남스타일의 경우 리액션 비디오, 댄스 커버 비디오, 패러디 비디오 등 수많은 2차적 문화 대상들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생산, 유포되었음에도 오히려 이것이 이들로 하여금 반복적, 질적 소비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하면서 바이러스적이며 독성적인 미디어 교환의 의존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실제 수많은 탈/재형태화된 2, 3차적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들이 다양한 제작 스킬과 노력을 통해 전 세계적 규모에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왔다. 결국 강남스타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디지털 밀리유에서의 이러한 열풍은 해당 오리지날 콘텐츠의 질, 음악적 수준, 가수의 매력 등으로만은 한정될 수 없는 것이다. 즉 공진화하는 관계인 소비자와 그 외부적 조건과 환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만큼 전지구적 디지털 환경은 빠르게 표준화되고 있다. 실제, 중국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 아프리카의 학생들, 이튼, MIT 마칭 밴드, 나사의 교육 요원, 전 세계의 군인들 뿐 아니라 주요 세계적 도시들이 자신들만의 ‘스타일’ 만들기가 필요했던 조건에서 이에 몰두했으며 ‘런던 스타일’, ‘상하이 스타일’ 역시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그 필요조건에 의해 등장했다. 이러한 바이러스적이기까지 한, 자체적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생산 열풍은, 그래서, 위상학적 변형을 특징으로 하는 전지구적 문화 산업과 특히 유투브와 같은 디지털 밀리유에서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엄격히 재고려 되어야 한다. 또한 적어도 구글의 입장에선 새로운 전지구적 문화의 새로운 산업화의 핵심으로 강남스타일 현상을 바라본 점은 분명해 보인다.   


 


강남스타일의 경우에서 보듯이 전지구적 대중문화는 더욱 더 미디어 교환에 기반 한 문화적 대상의 사회적 삶, 생명성을 통한 ‘탈형태적 대상’의 가능성에 의존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 산업은 언제나 다른 것과 함께 하는 보조재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문화적 대상은 ‘사물 존재(thing)’로 흘러가고 그 흐름 속에서 계속 배제됨으로 포함되어진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케이팝 현상은 듣는 음악에서, 다른 것을 함께 하는 무엇으로의 멀티 센서리 기억의 꾸준한 문화 산업적 적용 결과이다. 그리고 결국 이것은 일견 방치되어져 있는 것 같지만, 궁극적인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이처럼 케이팝의 산업화는 본질적으로는 내적인 ‘산업화된 선물 거래’ 시스템에 근거하고, 여기서 바이러스성 복제와 적용의 집단화의 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글로벌 문화산업은 어느 순간 이를 본격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신곡을 만들 때 이러한 순서로 합니다. 듣다가 좋은 외국 노래나 비트를 따옵니다. 그 다음 그 위에 무조건 제 느낌을 조금씩 입힙니다. 그 후엔 서서히 리듬, 비트, 구성 등을 손댑니다. 그래서 한 달에 100곡도 만들 수 있죠”(인터뷰. 케이팝 프로듀서 전세진, 27).


 
마치며


 


지금까지의 문화 산업에 대한 분석틀은 ‘불확실성(precariat)’과 문화 미디어 정책, 그리고 지역성 연구에 집중되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프렛, 질, 맥로비, 하스몬달프 등은 ‘프리캐리엇’을 중심으로 노동, 교육, 정신적 환경에서의 불확실성에 집중하여 문화산업을 분석했고, 문화산업과 관련한 정부, 미디어 정책 그리고 로컬리티에 대한 의미 재생산적 문화지형학 연구는 이미 오래된 관심이었다. 그러나 이젠 여기에 위상학적 접근을 통한 ‘끊없는 새로운 것 속의 환영’을 들추는 새로운 문화산업 연구를 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탈형태화와 재형태화의 용이함과 문화적 대상의 사회적 생명성을 통한 미디어 교환 시스템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90년대 IMF 후 안재욱, 클론, HOT가 중국에서, 그리고 류시원이 일본에서 퍼포먼스, 이미지, 비쥬얼리티에 기반한 인기를 얻은 점에서 비레코딩 산업의 가능성에 케이팝 업계는 처음 주목하였다. 2000년대 이후 컴필레이션 앨범 열풍 이후 디지털 프리 음악으로 연이은 산업적 어려움을 경험하였으나, 그 와중에 가장 먼저 ‘문화적 선물’과 ‘미디어 교환’의 개념에 눈을 떴고, 전지구적 문화 산업과의 예기치 않은 만남 속에서 2012년 강남스타일은 유투브, 구글 음악의 첫 케이스로까지 등장하였다. 그래서 한류 산업은 그동안 연구되어온 방식인, 아시아적 가치 등과의 관련성보다는 가장 자본주의적 특히 신자유주의적 문화생산 양식인 리좀적 지역성의 전지구적 위상학적 흐름 생산 양식에 주목하여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때 우리 모두를 잠시나마 즐겁게 해 주었던, 비와 싸이의 전 세계적 열풍 소식은 모두 본질적으로 환영(illusion)임에 분명하다. 다만 그 차이는 비를 향해 로컬 산업과 자본주의가 꿈 꾼 것인지, 싸이를 보며 글로벌 문화 산업과 자본주의가 꾸어본 꿈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주의의 환영은 벤야민이 ‘지옥의 영원성’이라 한 그것일 수도 있음을 항상 인식하는 것을 절실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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