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가을철 정기학술대회 세션 탐방 2
지상파 시사 피디들의 전문직주의 변화 :
KBS <추적 60분>의 보도본부 시기를 중심으로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1. 들어가며
2008년 이후 공영방송 KBS에 닥친 변화는 실로 큰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난 뒤 금세 경영진이 바뀌었고, 조직구조가 개편되었으며, 편성 방향이 변화되었다. 외부환경으로는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출범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케이블TV와 민영방송도 발 빠르게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통신기기의 발달로 디지털 촬영⋅편집 기술과 스마트폰을 통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활용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른바 정치적 환경, 조직 내부적 환경, 미디어 환경, 기술적 환경 모두 급변한 것이다.
이병순 시기 말기에 방송법 개정이 있었으며, 정연주 시기에 도입한 팀제는 약화되었다. 이병순 시기의 조직문화는 내부를 향한 안정과 통제를 지향하는 위계문화로 복지부동의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김인규 시기는 방송법 개정안이 효력을 발휘하고 종합편성채널 업체 선정 등 방송시장이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국부(局部)제를 도입하여 게이트키핑을 강화하였으며, 젊은 기자⋅피디 (주: 피디는 Producer, Director, Producing Director 등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는 용어로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직접 연출하여 제작하는 직종이나 사람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PD로 표기하기도 하지만, 이는 한국식 조어로 세계적 보편성을 갖고 있지 않지만 현장에서 생명력을 얻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본 논문에서는 한글로는 피디, 영어로는 Producer로 표기하기로 한다.)를 중심으로 새 노조가 출범했다. 조직문화는 내부와 외부를 지향하는 위계문화와 시장문화의 혼융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길환영 시기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궤를 함께 하며 두 사장이 해왔던 내부 통제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현상유지와 내부통제를 지향하는 조직문화가 고착되고 있다(Cameron & Quinn, 1999). 2008년부터 2013년 11월 현재까지 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시사프로그램의 약화 현상이다.
그동안 시사프로그램은 큰 수난을 겪어왔다. KBS는 2008년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생방송 시사360> 등 시사 프로그램을 줄줄이 폐지하고 탐사보도팀을 해체하면서, 시사 프로그램의 ‘힘 빼기’ 작전에 들어갔다(<PD저널>, 2013년 10월 4일). KBS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프로그램은 <추적 60분>으로 2010년 6월 보도본부로 이관되면서 기획제작국은 다큐멘터리 국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런 조직개편은 피디들이 시사 프로그램을 하면 안 되며, 꼭 시사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면 보도본부에 가서 하라는 암시로 읽혔다. <추적 60분>의 보도본부 이관은 김인규 사장의 ‘피디저널리즘=외발저널리즘’이라는 인식의 결과물이었다. 피디들이 제작해온 <추적 60분>이 피디들의 제작방식만으로는 제대로 된 시사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적 60분>의 보도본부 이관은 피디들이 보도본부의 기자들과 협업을 통해서 균형감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동반했다. 결국 김인규 사장은 시사 영역을 피디에게서 떼어내어 기자에게 붙여준 셈이다.
<PD저널>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진행된 <추적 60분>의 보도본부 이관은 게이트키핑을 강화해 피디저널리즘의 비판성을 옥죄기 위한 시도라는 내부의 반발을 샀다. KBS의 한 PD는 “이관 당시 PD와는 다른 보도국의 문화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데스크에 의한 아이템 게이트키핑이 강화될 것으로 우려했다”고 말했다. 보도본부로 이관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0년 8월,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의 이른바 ‘막말 동영상’을 입수한 제작진은 곧바로 취재에 돌입했지만 시사제작국장의 반대로 아이템이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2010년 11월 천안함 사건의 의문을 파헤친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도 제작방향에 대한 제작진과 데스크의 의견 차이로 갈등을 겪다가 방영됐다. 12월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파헤친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 편은 “방송 내용이 공정하다”는 사전심의에도 “4대강 사업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방송이 두 차례 연기됐다. 2013년 8월 31에는 간첩혐의로 구속된 서울시 공무원 유 모 씨의 1심 무죄 판결 과정을 다룬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이 ‘재판 중인 사건’이라는 이유로 한 차례 방송이 연기됐다(<PD저널>, 2013년 10월 4일).
<PD저널>
이런 ‘수난’ 속에서 <추적 60분> 피디들은 보도본부에서 다시 TV본부로 복귀하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2013년 9월 <추적 60분>은 3년 3개월의 보도본부 생활을 마치고 TV본부(옛 콘텐츠본부) 기획제작국으로 다시 귀환하게 되었다. 보도본부 시기에 피디들은 저널리즘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기자의 게이트키핑을 통과하기 위한 작업규범을 만들었으며, 피디들의 연대를 통해 집단 정체성을 강화해갔다.
정치적 환경 변화, 미디어 환경 변화, 조직구조 개편,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방송 콘텐츠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때, 마찬가지로 간과해서는 안 될 요소는 피디의 전문직주의의 변화다. 공영방송에 있어, 피디 자신이 직무에 자율성을 갖고, 자기 규제적 규범을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새로운 작업관행을 만들어가며, 공공서비스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영 방송 콘텐츠의 대부분을 피디가 책임지고 있으며 (주: KBS 전체 내부 프로그램 중 기자가 만드는 뉴스나 기획취재물,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은 피디가 만든다. 2012년 현재, KBS TV 프로그램 중 피디가 만드는 비율은 프로그램 개수나 방송시간 모두 동일하게 약 76%에 해당한다(KBS 내부자료).), 제작지원 그룹과 달리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 대중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영방송 체계 내에 다양한 하부체계가 존재하며, 피디의 전문직주의 구성요소 역시 하나의 하부체계라고 한다면, 전문직주의 구성요소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살피는 것은 공영방송의 콘텐츠 변화는 물론, 공영방송의 위상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 전문직주의의 구성 요소
전문직주의는 다양한 차원으로 구성된다고 볼 때 속성적 차원과 태도적 차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표 1>에 정리된 것처럼 그로스(Gross, 1958)는 전문직주의 구성 요소를 직업에 대한 고도의 참여의식, 경제적 보상보다 내면적 보상을 기반으로 하는 직업에 대한 의무감, 공식적 비공식적 전문가협회를 통해 다진 동료 전문인에 대한 친밀감이나 연대의식으로 구분했다. 라슨(Larson, 1979)은 인지적 차원(cognitive), 규범적 차원(normative), 평가적 차원(evaluative)으로 나눴다. 홀(Hall, 1968)은 전문직 구성요소를 전문직 조직을 주요 준거로 사용, 공중에게 서비스한다는 믿음, 자기규제에 대한 믿음, 현장에 대한 소명의식, 자율성으로 구분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미디어 체계를 비교한 핼린과 만치니(Hallin & Mancini, 2004/2009) 역시 전문직화의 차원을 자율성, 고유한 전문직 규범, 공공서비스 지향성으로 분류했다.
<표 1> 전문직주의 구성요소에 관한 기존 연구
| 학자 | 태도의 차원 | 내용 |
| Gross (1958) |
참여의식 | 직업에 대한 고도의 참여의식 |
| 직업에 대한 의무감 | 경제적 보상보다 내면적 보상에 중점 | |
| 친밀감이나 연대의식 | 공식적 비공식적 전문가협회를 통해 다진 동료 전문인에 대한 느낌 | |
| Hall (1968) |
전문직조직 준거 | 아이디어와 판단을 위해 공식적인 조직과 비공식적인 동료집단을 준거로 사용하는 것 |
| 공중 서비스 | 전문직이 꼭 필요하다는 인식과 자신의 일이 공중과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생각 | |
| 자기규제에 대한 믿음 |
전문직의 일을 판단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동료 전문직이고, 그런 실제 일 관행이 바람직하고 실제적이라는 믿음 | |
| 소명의식 | 전문직종사자가 자신의 일에 대해 헌신하고, 더 적은 외부적인 보상이 있더라도 이 일을 하겠다는 생각 | |
| 자율성 | 전문가는 고객이나 전문직종사자가 아닌 외부 사람 등 외부와 조직 내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 | |
| Larson (1979) |
인지적 차원 | 전문직이 가지는 지식, 기술, 훈련을 강조 |
| 규범적 차원 | 어떠한 서비스가 누구에게 제공되느냐는 직업집단의 정향성이나 윤리를 강조 | |
| 평가적 차원 | 전문직 종사자의 자율성과 특권을 강조 | |
| Hallin & Mancini (2004) |
자율성 | 작업과정에 대한 통제권 |
| 전문직 규범 | 업무 관행, 윤리적 원칙 | |
| 공공서비스 지향성 | 공적 수탁자로서의 저널리즘의 사명 |
학자들이 제시한 전문직주의 구성 요소의 공통 요소들을 추출하면 다음과 같다. 라슨의 평가적 요소, 홀의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 핼린과 만치니의 ‘작업 과정에 대한 더 많은 통제권을 정당화하려는 핵심 이유’가 자율성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전문가집단 내적인 차원으로 그로스의 공식적 비공식적 전문가협회를 통해 다진 동료 전문인에 대한 친밀감이나 연대의식, 홀의 전문직 조직 준거와 자기규제에 대한 믿음, 핼린과 만치니의 고유한 전문직 규범에 공통되는 요소인 직업 내적 규범이다. 세 번째는 직업 외적인 차원으로 고객이나 공중에 대한 차원이다. 어떠한 서비스가 누구에게 제공되느냐는 직업 집단의 정향성에 대한 라슨의 강조, 홀의 공중 서비스 차원, 핼린과 만치니의 공공서비스 지향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핼린과 만치니의 언론인 전문직주의 구성 요소 즉, 자율성, 고유한 전문직 규범, 공공서비스 지향성은 여러 학자들의 공통점을 잘 추출해냈다고 볼 수 있다.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신의 일이 방해받지 않는 정도를 나타내는 자율성은 전문직의 가장 대표적인 특성이고, 외부 행위자에 의해 저널리즘 직무가 통제된다면 전문직 규범이 직무 지배력을 지닐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전문직 규범과 자율성 사이에는 명확한 연관관계가 있다. 또한 여타 전문직과 비교할 때 언론인에게는 비전적(esoteric) 지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자율성과 권위를 주장하는 근거의 상당부분이 공익을 위해 복무한다는 주장에 의존하기 때문에 공공서비스 지향성 역시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핼린과 만치니의 분류 틀을 사용하여 <추적 60분> 피디들의 보도본부 시기 전문직주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3. 연구방법
본 연구는 심층면접이라는 질적인 연구 방법을 사용했다. 민속지학적 접근법의 하나인 심층면접의 목적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고, 가설을 검증하려는 것도 아니며, 평가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심층면접의 근원에는 다른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과 그 경험으로부터 만들어내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Seidman, 2005/2009). 즉 연구 참여자들의 체화된 경험으로부터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다. 심층면접은 인간 행동의 맥락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며, 이를 통해 연구자가 그 행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준다. 심층면접 연구에서의 기본 가정은 인간이 자신의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가 그 경험을 수행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Blumler, 1969).
본 연구에서는 질적 연구에서의 타당도를 높이기 위한 링컨과 구바(Lincoln & Guba, 1985)의 신뢰성 준거를 따르는데, 충분한 기간 동안의 집중적인 관찰은 일관적인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분석의 타당성을 높일 수 있다. 인류학의 경우 1년, 교육학 분야는 3개월 정도의 현장작업을 요구한다고 할 때, 2011년 6월 말 이래로 2013년 11월까지 심층 면접과 자료 수집을 수행하여 충분한 기간을 확보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심층 면접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헌자료를 활용함으로써 면접의 내용을 재확인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연구자 간의 상이한 주장을 교차 확인함으로써 심층면접 내용의 타당도를 높이고자 했다. 또한 맥락을 무시한 단편적인 인용방식이 아니라, 비교적 긴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면담의 탈맥락화를 피하고자 했다. 덴진(Denzin, 1989)에 따르면 심층적 기술은 설명할 대상에 대하여 전반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 상황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언어를 사용하여 현상의 복잡성과 상황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질적 연구의 목적과 특징을 생각해 보았을 때 현상을 얼마나 이해하기 충분할 정도로 참여자의 삶을 밀도 있고 근접하게 기술하였는가는 연구를 평가하는 준거가 될 것이다. 행위의 맥락에 대한 기술, 행위에 숨어있는 의도와 의미의 진술, 그 행위의 전개과정 전후의 기술, 독자가 그 상황을 해석할 수 있도록 그 행위를 텍스트로서 발전시켜 제공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 본 연구자는 제작환경에 대한 기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한 기간 동안의 집중적인 관찰, 문헌자료와 면담자료 간의 교차확인, 맥락을 살린 심층기술과 반영적 주관성을 통해 질적 연구의 타당도를 높였다.
2011년 6월 몇몇 피디의 사전 조사를 통해 제작체계의 주요 변화와 전문직주의 구성 요소를 파악한 다음에 1차 조사를 시작했다. 1차 조사는 2011년 7월 22일, 29일 2명의 시사 피디를 각각 심층면접하면서 시작했다. 면담은 인터뷰 프로토콜에 의존해 구조적인 질문을 제시하고 답변에 따라 추가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반 구조화된 면담 방식을 택했다. 인터뷰 프로토콜은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한 것으로 피디와의 인터뷰 과정을 통해 보완했으며, 제작 체계의 변화, 전문직주의 구성 요소의 변화들을 묻는 질문들로 이뤄졌다. 1차 조사를 실시한 후엔 연구메모와 소감을 정리했으며, 1차 조사 결과를 토대로 프로토콜을 수정 보완하였다. 2차 조사는 2012년 3월 30일부터 4월 6일까지 시사 피디 4명을 심층 면접했으며, 3차 조사는 2013년 11월 7일, 14일까지 시사 피디 2명을 심층 면접하는 등 연인원 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각 면담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가량 소요되었다. 연구를 3차로 나누어 진행한 이유는 링컨과 구바(Lincoln & Guba, 1985)의 신뢰성 준거에 따라, 충분한 기간 동안의 집중적인 관찰로 일관적인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분석의 타당성을 높일 수 있기 위함이다. 또한 한 집단에 대한 구조화된 면담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세 번의 면담구조를 설계 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Schuman, 1982). 연구 참여자들의 인구학적 속성은 <표 2>과 같다. 이들 중 일부는 동일인으로 시간 경과에 따라 심층면접 함으로써 연구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표 2> 연구 참여자의 인구학적 속성
| 참여자 | 성별 | 경력 (인터뷰 당시) | 면담 일시 |
| A | 남 | 13 | 11.7.22 |
| B | 남 | 8 | 11.7.25 |
| C | 여 | 16 | 12.3.30 |
| D | 남 | 17 | 12.4.6 |
| E | 여 | 16 | 12.4.6 |
| F | 남 | 19 | 12.4.5 |
| G | 남 | 10 | 13.11.7 |
| H | 남 | 20 | 13.1114 |
4. <추적 60분> 피디들의 전문직주의 변화
피디가 만드는 대표적인 탐사 프로그램인 <추적 60분>은 기자⋅피디 협업이라는 명분 아래 보도본부로 이관되었다. 보도본부에 이관 된 뒤에도 피디들에게 내려진 징계는 <추적 60분>이 얼마나 뜨거운 감자였는지를 방증한다. 방통심의위는 2011년 1월 전체회의를 열어 <추적 60분> ‘천안함 의혹, 논란은 끝났나?’ 편(2010년 11월17일 방송)에 대해 중징계인 경고 제재를 내렸고, <추적 60분> 제작진은 방통심의위 결정에 반발해 재심을 청구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방통심의위는 2011년 3월 <추적 60분>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 사업의 쟁점’ 편(2010년 12월22일 방송)에 대해서도 권고 조처했다. 2010년 말 방송된 4대강 편은 그 전에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두 차례나 불방 되었다. 2010년 12월 <추적 60분> 제작진은 사측의 4대강 편 불방 결정에 반발해 사내에 불방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펼침 막을 내걸었다는 이유로 견책 등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한겨레신문 2012년 3월 9일자). 수많은 징계 속에서도 <추적 60분>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들을 다뤘으며, 피디들은 상대적인 자율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전문직 규범을 창출했으며, 공공서비스 지향성의 변화를 겪었다. 도대체 <추적 60분> 피디들은 어떻게 수많은 징계와 압력 속에서 전문직주의를 견지해왔을까? 이것이 본 연구의 시발점이었다.
1) 자율성
(1) 피디 저널리즘에 대한 공격과 이상한 동거
정권 교체와 경영진 교체에 따라 피디들의 자율성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시사 장르다. 정권을 직접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대표적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추적 60분>은 2010년 조직 개편으로 콘텐츠본부 기획제작국에서 보도본부 시사제작국으로 이관되었으며, 기자인 국장의 관리를 받게 됐다. 기자⋅피디 협업이라는 대의명분을 <추적 60분>이 짊어진 것이다.
<추적 60분>을 보도본부로 보낸 건 제가 생각하기에는 김인규 사장이 피디들이 시사프로를 하면 안 된다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는 보도본부 내에 있는 <추적 60분>은 피디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당연히 피디 저널리즘을 없애려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현재까지는 <추적 60분>은 잘 버티는 편이라고 생각을 해요(B).
피디들은 보도본부 이관을 강력한 의구심으로 바라보았다. 보도본부에서 기자 간부의 게이트키핑을 통해 피디들의 제작관행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피디들이 시사프로그램을 할 수 없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보도본부 이관은 피디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조치였다. <추적 60분>이 보도본부로 이관되었을 때, 피디들이 느끼는 감정은 피디 사회로부터 버려진 느낌이었다고 한다. 보도본부로 파견될 피디들을 지역 피디들 중에서 공모하거나, 내부공모를 시도했지만, 결국은 <추적 60분> 피디들이 그대로 파견되었다. 그 과정에서 피디들은 문제제기나 항의 없이 방조한 피디협회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동료집단으로부터 버려지고, 기자들로부터는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은 피디들의 절망감은 큰 것이었다.
2010년에 올 때를 생각해 보면 (침묵) 굉장히 안 좋죠. 우리가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고 그러면서 왔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보도본부에서 환영해주는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 그 모양새가 왜 더 안 좋았냐면, 당시 보도본부로 보내야 한다고 했을 때 <추적 60분> 구성원들이 보내는 건 좋다 우리는 안 간다고 했고 위에서는 그것을 알겠다고는 했지만 대신 새로운 멤버를 보내겠다고 하고서는 지역에서 피디를 보낸다고 해서 지방에서는 반발하고 내부에서 공모를 통해 모아본다고 했지만 결국은 남아 있는 구성원들이 가야 할 상황이었죠. 피디 사회에서도 저희가 느끼는 충분한 문제제기라든지 항의가 없었기 때문에 너희들이 가서 희생해라 이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당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피디 사회가 우리를 버렸다……(B).
회사 경영진으로부터도 피디 사회로부터도 버려진 느낌을 받은 피디들이 높은 자율성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율성은 연대를 통해서 강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2011년 당시 면담에 응한 피디는 도중에 침묵을 보이는 등 조직개편으로 인한 후유증이 적지 않아 보였다. 실제 보도본부로 이관된 뒤 <추적 60분> 피디들의 자율성은 큰 타격을 받았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사진을 자료로 사용하기도 부담스러운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때는 언론의 자유가 마음껏 보장되었고, 특히 시사 피디에게는 그만한 때가 없었던 거죠. 비록 참여정부라지만, 참여정부를 언제라도 비판할 수 있었고, 잘못된 것을 과감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죠. 제가 이명박 관련 아이템 하겠다고 이야기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분위기가. 실제로 제가 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길게 회의도 하지 않고, 그건 어렵다고 이런저런 루트로 이야기가 들어왔기 때문에 그건 어렵고, 만약에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자료를 넣어야 할 경우도 있을 텐데, 그 얼굴조차 쓰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상당히 억눌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A).
이런 고립무원의 환경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지나친 게이트키핑으로 피디들은 철저한 자기검열 기제를 작동하게 되었다. 피디출신 EP(Executive Producer)와 기자출신 국장을 설득해야 하는 까다로운 지휘계통으로 인해 피디들은 조직에 만연한 억압이라는 분위기를 '삼투압'처럼 느끼게 되었다.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피디로서 내가 어떤 아이템을 해야겠다, 어떤 인물을 인터뷰를 해야겠다 했을 때는 그 가치 판단 기준에 회사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그게 제일 큰 거예요. 무슨 아이템을 생각을 하면 이게 회사에서 통과가 될까, 데스크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것을 통과 시키려면 또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를 많이 생각하게 되고 실질적으로 일을 할 때 많은 간섭이 들어오고.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어느 정도 컨트롤을 하고 걸러서 작업을 했다고 생각을 해도 또 한 번 또 거르는 작업들이 심하게 들어오고 그런 것들이 심해지다 보니까 결과물로 나오는 것들이 색깔이 없고, 너무 과도하게 거르다 보니까 프로그램이 이상해지는 경향이 있고, 또 그런 과정들을 두세 번만 겪고 나도 피디가 시달리니까, 피곤하니까 그런 아이템을 하기가 싫어지는 거예요(E).
하지만 보도본부 시기 <추적 60분>은 <표 3>에 정리된 것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아이템인 천안함 사건과 4대강 관련 방송을 각각 2회씩 방송했다. 피디들은 징계와 압력을 마다하지 않고 치열하게 자율성 다툼을 벌였고, 그 결과 상대적인 자율성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표 3>2010년∼2011년 <추적 60분>에서 방송한 천안함, 4대강 소재
| 일 자 | 내 용 |
| 2010. 05. 05. | 천안함 무엇을 남겼나? |
| 2010. 11. 17. |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
| 2010. 12. 22. |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 |
| 2011. 07. 13. | 긴급점검, 4대강 안전한가? |
따라서 시사 피디의 상대적 자율성은 치열한 싸움 끝에 얻어낸 일종의 전리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느 피디는 보도본부에 이관된 것은 제작진의 뜻에 어긋났지만, 결과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보도본부에 이관된 것이 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한 피디는 특히 TV 본부로 돌아온 뒤에 느끼는 보도본부 시절의 3년 3개월은 이상한 동거라고 설명했다.
보도국에서도 우리에게 간섭을 덜하고, 곤란한 충돌을 피하려고 했고, 처음에는 충돌했으나, 서로 충돌 피하는 이상한 동거를 했죠. 오히려 우리가 너무 장악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가 할 프로그램은 해야 한다는, 피디들이 만드는 시사프로그램의 최소한의 역할은 해야한다는 생각이 강조되고 공유되었다(H).
자율성은 제작본부에 온 것보다는 더 나았을 것 아닌가. 보도에서는 억압, 통제하기보다는 달래면서 타이르면서 사고만 안치게 하는 입장이어서,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는데, 우리도 넘지 않고, 저쪽도 밀어붙이지 않고……(G).
김인규 사장이 명목상 내건 '기자와 피디의 협업을 통한 저널리즘의 회복'이라는 명분이 상이한 직업집단의 동거를 통해 확보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인규 사장은 ‘피디들이 시사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며 피디저널리즘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PD저널> 2010년 3월 23일). 피디들에게 시사프로그램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추적 60분>을 보도본부에 이관시켰던 것이다. 피디들은 이러한 상대적인 자율성이 TV본부에 돌아온 뒤에는 담보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제작본부에서는 그게 어려워질 거예요. 사실은 거부하는 명분은 ‘재미없을 것같다’ ‘예전에 했던거잖아’ 등 명분이 나오고 부딪히면, 피디들도 스스로 기준을 조정해 나가니까, 자율성 측면은 나빠질 위험이 크다. 섬이라고 표현했는데, 제작본부와 교류가 없으니까 제작본부에는 시사가 무너져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들은 시사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제작본부에 오면, 어렵다는 생각을 내면화하지 않을까?(G)
피디들은 보도본부로 이관된 것이 오히려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증언한다. 콘텐츠본부(옛 TV제작본부)에 속해 있었다면,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인간관계 때문에 이처럼 치열하게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그런 말도 해요. 콘텐츠본부로 돌아가야 된다고 계속 싸우고 있지만, (실은) 돌아가면 더 힘들다. 왜냐하면 지금은 오히려 쉽게 말하면 외형적으로 우리가 탄압을 받는 형국이고, 실제로 탄압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굉장히 큰 싸움으로 탄압을 받는 게 눈으로 보이고 그 사람들이 지시한 것이 불합리하다는 게 겉으로 드러났으니까 여론이 우리한테 돌아오기 쉬운데 가버리면 가는 건 좋은데 사실 지금, 다시 리셋이 되니까 이게 오히려 옛날식으로 과 역할 분담이나 이런 문제 때문에 그렇게 되면 오히려 <추적 60분>이 사회(문제)를 많이 다루는 프로그램으로 요구받진 않을까? 근데 지금은 여기 있으니까 이 아니라 우리 할 거 다하니까 다른 팀들하고의 아이템 덜 신경 쓰고 오히려 독자적인 게 되니까 어떤 후배들은 오히려 시사 프로가 됐다. 회사의 의도와 달리, 우리가 걱정했던 거와 달리 저 쪽에서 무리수를 두다 보니까 여기서도 당할 수만 없다보니까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나름대로 이상한 자율과 그런 게 만들어졌는데 정상적이진 않죠. 그래서 오히려 돌아가면 피디선배들하고 싸워야 할 그게 더 힘들 수도 있다.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F).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피디 선배와의 자율성 다툼이 기자 선배와의 다툼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추적 60분>이 콘텐츠 제작본부에 있었다면, 이 겪었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겠다. 하지만, 피디들이 예견했듯이, TV 본부에 돌아온 <추적 60분> 피디들의 자율성은 새로운 파고를 맞을 것임이 분명하다.
(2) 게이트키핑을 둘러싼 줄다리기, 그리고 연대
<추적 60분>이 보도본부에 이관된 뒤 피디들이 가장 먼저 만난 것은 기자직종과의 작업방식의 차이다. 기자 출신 본부장, 국장 아래 피디출신 EP, CP, 피디가 배정된 조직체계로 두 직종 사이의 작업방식이 충돌했다. 기자들은 짧은 호흡으로 핵심을 전달하며, 원고를 쓰고 나서 편집을 하는 원고 중심적 업무프로세스를 택하는 반면, 피디는 기자의 1~2분짜리 프로그램에 비하면 훨씬 긴 60분 안팎의 프로그램을 일일 단위가 아닌 주 혹은 월 단위로 제작하며, 핵심적인 내용보다는 이를 둘러싼 정황에 초점을 맞추어 취재하여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고 대본은 나중에 완성하는 업무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원용진⋅홍성일⋅방희경, 2008). 두 제작방식의 차이뿐만 아니라, 팩트와 객관성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추적 60분>은 진통을 겪었다. 당시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피디들은 기자 간부들의 과도한 게이트키핑으로 프로그램의 사회비판 기능이 둔탁해졌으며,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낮아졌다고 지적한다.
(게이트키핑이) 일상화되다 보니까, 처음에 취재를 할 때부터 인터뷰 숫자 맞는지 세고, 막 이런 것들을(웃음) 진짜 이렇게 된다니까요(웃음). 왜냐하면 안 지킨 걸 가지고 막 뭐라고 하니까. 저처럼 싫은 소리 듣기 싫어하는 성격에는 아예 안 들으려고 그렇게 하는데도 더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 진짜 나중에는 프로그램 만들어 놓은 거 보면 이상해져 있어요. 멘트도 이상해져 있고, 왜냐하면 그게 흐름을 완전히 깨잖아요. 전체적인 틀에서 균형 있게 하고 나머지는 구성의 미학을 맞추어줘야 하는데 이건 뭐 구성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이 자리에 인터뷰 들어왔으면 그 다음에 하나 들어가야 되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완전 망가지는 거죠. 저희가 <추적 60분>이 지난 1년 동안 아이템들은 하기는 했지만 결국 방송으로 보면, 프로그램만 놓고 보면 참 예리하지가 않고, 날도 안 서있고 하다가 만 것 같고, 그런 느낌이 나는 이유가 그 세 차례, 네 차례 거치고 나면 물이 다 빠져요(E).
게이트키핑의 일상화로 인해 피디들은 취재할 때부터 그리고 편집할 때 틈틈이 인터뷰 숫자를 세고,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계적 균형을 맞춘 결과가 진실에 다가가기보다는 진실을 희석시킨다는 사실이다. 기계적 객관성에 대한 압력과 더불어 유무형의 압력도 존재했다고 한다. 특히 KBS와 관련된 아이템의 경우, 압력의 내용은 공영 방송사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세계 7대 경관을 취재한다고 하니까 아주 난리가 났죠. 못하게 하는 이유가 이 팩트를 어디까지 검증할 수 있느냐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데스크들이 “너 이거 자신 있냐? 저쪽에서 붙었을 때 너 이길 수 있을 만큼 취재 거리가 있냐?” 를 물어보면 당연한 우려죠. 그런 것이 아니라 첫 말이 “제주도에서 걱정이 많은데”, “이건 하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걸 누가 받아들일 수 있냐구요? 당연히 제주도는 싫어하겠죠. 싫어하지만 그걸 해야 하는데 “국가적 행사이고 KBS도 개입되어 있는데”, 그러면 그게 취재하는 사람들 맥 빠지게 하는 거예요. 그럼 도대체 저 사람들은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한테 이러는지. 그러니까 서로 신뢰가 안 생기는 거예요(E).
피디 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동료에 대한 신뢰 대신에 불신이 만연하고 피디집단이 CP이하의 피디들과 EP 이상의 간부로 양분되었다고 한다. 피디들은 이병순⋅김인규 시기에 선배들의 옥석이 가려졌다며, 이것이 조직의 소통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후배들 욕을 먹으며 자율성을 방해하는 선배들은 선배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생겼다. 대신 뜻이 맞는 CP와는 더욱 강한 연대감이 형성되었다.
아무래도 저희가 예전에 CP나 EP, 국장을 대하는 태도와 요즘의 태도는 완전히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지금은 제가 볼 때는 CP 정도까지만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EP 위로는 벽이 많이 생긴 거죠. 기본적으로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게 이번에 국부제 되면서 전선이 확실히 생긴 거 같아요. 지금은 선후배간의 불신의 벽이 확실히 커진 게 아닌가……. 과연 이것이 해소가 될 수 있을 지가 의문이 될 정도니까. 부장이나 국장과는 거의 이제 대화를 별로 안하는 상태고 대화를 한다면 우리의 항의나 반발 이런 거 이외에는 대화를 안 하는 상태가 되었어요. 예를 들면 국장을 찾아가는 것은 인사 발령에 대한 반발 아니면 찾아갈 게 없는 거죠(B).
CP를 중심으로 피디들이 연합하여 조직적으로 대항한 만큼, 2010년 말 이후에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항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피디들에 따르면 2010년 11월 방송된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은 스튜디오 녹화 직전 VCR 원고를 수정한 국장에게 피디들이 녹화를 하지 못하겠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국장이 원고 수정하지 않으면 불방처리하고, 업무지시 불이행이라고 경고했는데도 피디들은 2∼3일 국장 방에서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피디들의 저항과 노조의 항의로 인해, 결국 방송은 나갔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경고를 받았다. 2010년 12월 방송된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 편은 두 차례나 불방되는 등 더욱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천안함 때는 원고 하나 토씨 하나까지 싸웠는데 이때는 원고도 안 봤어요. 무조건 방송을 못 내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때는 왜냐면 청와대로부터 지시가 내려온 것도 있었고, 노조에서 입수를 해가지고 공개가 됐어요. 방송을 막으라고 했는데 그래가지고 심각한 문제가 됐었거든요. 그러면서 우리 방에는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피디들이 플래카드가 걸었어요. 사건이 끝나가지고 국장이 떼라 이거야. 왜냐면 애들한테 불방의 사유를 말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렇게 하는 거는 내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애들과 만들어가야 할 상황에서 내가 설득할 길이 없다. 적어도 내 나름대로 이러 저러하고 이러 저러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길 하고 그러면 떼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못 뗀다 그랬더니 나보고 지시불이행이라고 그 때 감봉 받고 그게 크게 나갔던 거죠. 그러면서 인사위원회 가서 몇 번 인사위원회 보류되고 다시 하고 재심하고 그게 결론이 난 게 5월엔가 났어요(F).
방송 시작되고 6개월여의 싸움 중에 국장이 바뀌고, 2011년 5월 16일 인사위원회 재심을 열어 CP에게 견책, 피디 두 명에게는 경고의 징계를 확정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용’을 지불한 피디에게 상대적인 자율성의 공간이 생겨났다.
피디 쪽에서는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게 하나 남았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 내부에서도 더 이상 밀려선 안 된다는, 이것까지는 밀려선 안 된다는, 오히려 막 싸워서 <추적 60분>이 지금은 약간 경영진이 봤을 때는, 회사에서 조직적으로 봤을 때는 약간 사각지대 같은 특수한 좀 상황이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큰 싸움을 몇 번 하고 나니까 그 이후에는 이제는 서로서로 그렇고 그런 놈……. 서로서로 그런 시각이 되다 보니까 어느 정도 자율적인 공간이 확보 되었어요. 근데 이건 굉장히 위기에 몰려서 막다른 골목까지 간 특수한 상황이라는 거죠. 거기까지 오기까지의 과정은 지금 그런 것들이 유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됐고, 그런 자괴감들이나 여러 가지가 고스란히 배경이 된 거죠(F).
더 이상 밀릴 데가 없다는 절망감에서 피디들은 집요한 저항을 했고, 이 경험은 2012년 파업에 큰 동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사와 피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을 받은 피디들은 CP를 중심으로 굳게 연대하여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했다. 2010년 보도본부로 이관된 뒤 피디들이 느꼈던 좌절은 2010년 말의 ‘투쟁’으로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저희 프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어쨌든 2010년에 그러한 일들 때문에 어떻게 보면 얻은 조그마한 성과라고 생각해요. 쉽게 간섭받지 않고 보장받는 것은 2010년에 비해서 국장이 바뀌고 상관이 바뀌고 정권 말기의 분위기도 있고, 회사 외적으로 다른 문제들도 있는 복합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2010년의 투쟁성과가 있어서 지금은 어쨌든 우리 프로그램을 하는 것에 있어서 자율성이 지켜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B).
피디들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 것은 피디들의 끊임없는 직업적 정체성에 대한 환기와 결속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투쟁으로 상대적인 자율성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율성은 보도본부 이관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생겨난 뜻밖의 결과라고 하겠다.
2) 전문직 규범
(1) 객관성 신화에 대한 자각과 한계 절감
<추적 60분> 피디들은 정권 교체로 인한 변화를 통해 간부들이 요구하는 객관성의 신화를 어느 정도 깬 경험을 한 듯하다. 간부들이 요구한 기계적 중립성의 허구성을 자각한 것은 물론, 피디들의 제작방식으로도 충분히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피디들이 제작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소가 피디인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가? 믿을만한 근거를 많이 찾아냈는가? 그리고 그걸 내가 믿을만하다고 생각한 것을 편집해서 시청자들에게 내었을 때 시청자가 그럴만하다고 인정할만한가? 반론이 양쪽으로 적다하더라도 그렇다면 공정하다고 봐야 해요. 그게 가장 중요한 거고……. 그런데 양적으로 반반 정도의 의견을 실어 줬지만 이건 누가 보더라도 양적으로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의미의 공정성은 아니죠. 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이니까(A).
이러한 점에서 시사 피디들은 다른 피디들과 차별화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일상적 게이트키핑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제작방식을 돌이켜보고, 게이트키핑을 뚫고 예민한 소재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기자와 피디 저널리즘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보는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좋은 저널리즘과 나쁜 저널리즘이 있는 것 같고요. <추적 60분>은 피디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으로써 좋은 저널리즘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 거고. <추적 60분> 자체는 피디들이 만들기 때문에 피디들의 조직인 콘텐츠본부로 가는 게 맞고요. 피디⋅기자의 협업은 다른 차원에서 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B).
피디들은 사장이 제기한 외발 저널리즘으로서의 피디 저널리즘에 동의하지 않고, 진실을 포착하기만 하면 결코 외발 저널리즘이 아니라는 인식을 강화한 것이다. 일부 피디들은 데스크로부터의 기계적 중립 요구 때문에 프로그램의 메시지가 약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피디들은 기자 간부들이 요구한 기계적 중립의 결과물이 사건의 진실과는 물론, 프로그램의 명료성과도 거리가 있다는 것을 체감한 것이다.
멘트라는 게 맛깔나게 써야 날이 서있고, 그것도 글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다 빼버리는 거예요. 문장 자체를 이상하게 만들면 이건 뭔 말을 하려고 한 건지, 연출을 하는 제 입장에서는 조금 더 선명하게 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건 저희끼리만 아는 부분들이죠. 2∼3년 동안 우리 시사프로 나간 걸 보면은 프로그램적으로 입는 손상이 너무 컸지요(E).
하지만, 객관성 신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일방적 주관성에 흐르지 않도록 다양한 장치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작진 내부에서 나왔다. 객관성 신화가 깨졌다 하더라도 반론권 등 논지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관행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계적 균형이 나쁜 건 맞아요. 책임회피인데 그래서 그런 건 맞는데 최소한의 반론권 즉 형식적인 반론권이 아니라 내용적인 반론권을 줬을 때 더 힘이 있어요. 그래서 기계적 중립을 얘기할 그 때는 상황이 있지요. 어쩔 때는 그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형식적인 이야기 있잖아요. 그걸 다루면 되거든.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기계적 균형은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되고, 내용적으로 봤을 때 하면(균형을 맞추면) 되는 겁니다(F).
객관성 신화를 깨뜨렸다는 자각은 오히려 저널리즘에 대한 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