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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가을철 정기학술대회 세션 탐방 1 - 우리 공론장의 위기와 가능성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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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가을철 정기학술대회 세션 탐방 1


 


 


 




2013년 11월 충남대학교에서 개최된 <2013년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철 정기학술대회>의 대주제는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어>였다. 이러한 대주제에 부합하는 기획 강연으로 이루어진 성찰이 아래에서 소개하는 신태섭의 <우리 공론장의 위기와 가능성>이다. 그의 논의가 다루는 주제는 사실 1987년 이후 한국 언론과 민주주의, 혹은 달리 말해 ‘민주적 공론장’의 형성을 위해 한국 사회가 걸어왔던 과정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이를 통해 현재의 한국 언론과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전망을 도출하는 것이 과제로 남겨져 있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과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학회라는 연구자 공동체가 함께 모색하는 것이 어쩌면 지난 학술대회가 고민하였던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통해 그 고민의 일단락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공론장의 위기와 가능성


신태섭 (동의대)


 


1. 6공언론에 적합한 이름은?


 


우리 언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구한말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까지는 식민지형 언론체계, 그 이후로부터 전두환의 5공화국까지는 개발독재형 언론체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출범해 지금에 이르고 있는 제6공화국 언론에 대해선 뭐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식민지 시대나 개발독재 시대의 정권은 언론을 장악하고 동원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여겼다. 그리고, 언론자유나 민주적 공론장(오늘의 주제인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는 공론장(또는 언론체계)>이란 서로 다른 처지와 이해관계 혹은 이념을 지닌 구성원들이 타협하고 절충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의 제도와 문화, 혹은 그 같은 제도와 문화가 조성되고 작동하는 상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민주적 공론장’에 다름 아니다.)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량선인’이나 ‘좌경용공’ 등 ‘질서를 어지럽히고 체제를 부정하는’ 불순분자의 불법부당한 국가파괴 행위로 규정해 탄압했다.


일제시대나 개발독재시대에 언론자유나 민주적 공론장은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꿈, 일제로부터의 독립이나 민주주의 쟁취를 전제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는 희망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지만, 1987년 6월항쟁 이후 언론자유나 민주적 공론장을 요구하는 것, 또는 그 개선을 도모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당연지사 혹은 현실의 과제가 되었다.


 


2. 6.29선언의 다섯 번째 조항


1987년 6월항쟁에 대응해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원이 제시한 6.29선언은 ①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②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③ 김대중(金大中)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사범 석방, ④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⑤ 언론자유 창달, ⑥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⑦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⑧ 과감한 사회정화조치 단행 등 8가지 내용으로 돼 있다. 이 중 ⑤ 언론자유 창달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다섯째, 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 관련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의도가 좋더라도, 언론인 대부분의 비판의 표적이 되어온 언론기본법은 시급히 대폭 개정되거나 폐지하여 다른 법률로 대체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방주재 기자를 부활시키고 프레스카드 제도를 폐지하며 지면의 증면 등 언론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합니다.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하려고 시도하여서도 아니됩니다. 국가안전보장을 저해하지 않는 한 언론은 제약받아서는 아니됩니다. 언론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독립된 사법부와 개개인의 국민임을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핵심은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하려고 시도하여서도 안 된다’는 내용이다.


 


3. 양두구육의 지켜지지 않은 약속


그러나 6.29선언의 ‘언론자유 창달’은 지켜지지 않았고, 국민기만용 슬로건으로만 존재해 왔을 뿐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기존 족벌신문과 새로 창간한 대기업⋅거대종교 신문의 <한겨레신문> 포위 및 사영 상업방송 SBS 허가 등 ‘권⋅경⋅언 수평유착’과 ‘자본에 의한 언론통제’의 구조개편을 추진했다. 그리고 동시에, 공영 미디어에 대해선 ‘정권에 의한 장악의 해소 요구’를 거부하고 오히려 처벌하는 등 기만과 탄압의 전술로 대응했다. 입으로는 언론자유를 외치고 실제로는 그 요구를 기만하고 탄압한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그러한 기만정책의 연장선에서 ‘보도협조’라는 이름의 언론통제 시스템을 은밀히 운영하다 들통이 나 망신을 샀다.


‘권⋅경⋅언 수평유착’과 ‘자본에 의한 언론통제’라는 언론정책의 기조는 케이블TV를 도입한 김영삼 정부 때에도 변함없었다. 초원복집 사건에서 보듯, 삼당합당의 집권세력은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구들을 불법부당하게 자신의 선거운동원으로 동원·전락시켰고, 집권세력의 이 같은 ‘수고’(?)에 호응이라도 하듯, 시장지배적 신문들은 기꺼이 보수수구 정권의 선거운동원을 자임하고 나섰으며, 이후에는 보수수구 기득권 삼각동맹의 일각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그에 따른 혜택을 누렸다.


반면, 공영 미디어들은 여전히 정권에게 종속돼 있었고, 관료주의적 내부통제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KBS 노조는 90년 4월에, MBC 노조는 92년 9월에 정권의 방송장악에 반대하는 대규모 방송민주화 투쟁을 전개했고, 이후 방송에서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보수 관료집단과 방송민주화를 요구하는 개혁적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내연하는 상황이 이어지게 되었다.


노태우, 김영삼 두 정부 시기 동안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는 공론장(또는 언론체계)’은 여전히 그 전의 시기와 동일하게 현실이 아닌 희망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언론자유 창달’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비록 고의부도의 약속어음이지만 국민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달리 말해 언론자유를 합법적으로 당당히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 시기는 권경언 세 축의 권력이 형식적 민주주의의 허울을 쓰고 그 유착적 권력의 유지와 확대를 위해 언론을 은밀히 지배하고 통제하는 ‘보통사람을 가장한 기만적 권위주의’ 시대, ‘권경언 수평유착과 은밀한 통제의 도구적 언론’ 시대라 할 수 있다.


 


4-1. 새로운 도전 : 방송을 통한 민주적 공론장의 구축 시도


1998년과 2003년 각각 출범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공공성과 시장원리의 조화’를 정책기조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조 하에서 사회의 각 부문에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확장하고자 했다. 두 정부는 언론 부문에 대해서 방송⋅신문⋅인터넷 등 세 영역에서 ‘공공성과 시장원리의 조화’를 지향하는, 다른 말로 참여민주주의와 시장민주주의의 절충적 형태들을 도입하는 일련의 개혁들을 추진했고, 일정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우선 방송개혁과 관련하여, 두 정부는 방송을 민주주의의 보루로 재구조화하려 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12월부터 3개월 동안 방송개혁위원회(이하 방개위)를 구성⋅운영했다. 방개위는 수구보수와 개혁진보까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다양한 사업자들과 중립적인 전문가들까지 포괄한 사회적협의체였다. 방개위는 방송의 독립성 확보, 공익성 강화, 방송⋅통신 융합시대 능동대처, 시청자 권익과 복지의 향상, 독점방지와 공정경쟁 등 주요 방침들을 합의했다.


김대중 정부는 그 제안에 기초해 2000년 새 방송법을 제정했다. 2000년 방송법은 국가로부터의 방송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방송정책권을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규제기구인 방송위원회에 귀속시켰고, 공영방송의 경영자와 감독자 선임에 정부가 관여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공영방송의 예산과 인사 그리고 기본운영 방침의 결정권을 공영방송 자신에게 부여했다. 또한, 자본으로부터의 자율성 제고를 위한 소유⋅진입, 허가⋅재허가, 편성, 상업적 재원(간접부담), 광고 영업과 프로그램의 제작․편성의 제도적 분리 등을 독립성과 공공 서비스 제고에 부응토록 재정비했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 방송개혁은 경영과 조직 및 문화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관료주의적 내부통제의 혁파를 통한 내적 자유 확장을 추진한 것이다. KBS는 대팀제 도입을 통해 자율적인 상향식 의사결정구조를 도입했다. 그 결과, 사장이라 하더라도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지시할 수 없는 제도와 문화가 형성됐다. 방송사 자체의 이해관계에 입각한 관료주의적 통제가 줄고, 정부나 광고주 등 외부권력의 은밀한 개입도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방송의 독립성과 여론다양성을 제고한 법제개혁과 뒤이은 관료주의적 내부통제 혁파는 정부 감시와 비판을 강화해 FTA 비판보도나 줄기세포조작 폭로보도를 가능케 했고, 그 결과 당대의 각종 조사⋅연구에서 공영방송의 신뢰도가 최상위를 나타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4-2. 실패한 신문개혁


반면, 신문개혁과 관련해, 먼저 김대중 정부는 신문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시장 조사와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따라, 1999년 보광그룹 실소유주인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2001년에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조희준 국민일보 회장이 구속됐고, 송필호 중앙일보 사장 등은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이어서 2001년 7월, 신문시장의 경품류 제공 금지, 무가지 제공 및 강제투입 등 불공정판매 금지, 본사와 지국 관계, 지국에 대한 지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등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를 담고 있는 <신문업에있어서의 불공정거래행위 및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의 유형 및 기준>(이하 신문고시)을 제정⋅시행했다. 그러나 그 집행을 신문협회의 자율규제에 맡김으로써 실질적 성과는 얻지 못했다.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는 신문개혁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해 2003년 5월 신문고시 위반을 공정위가 직접 처리할 수 있도록 했고, 2005년 4월에는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했다. 이 조치로 인해 위법 경품과 무가지로 확장한 비율은 2007년 63.4%에서 2005년 33.4%로 줄었고, 각종 조사에서 전문가와 언론인들은 이 조치를 가장 잘한 대언론조치로 꼽았다. 그러나, 정권 말 대통령의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공정위가 신고포상과 직권조사에 소극적으로 돌아서고, 신문시장의 불법혼탁은 다시 되살아났다.


다른 한편, 참여정부는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면서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신문법)의 제정을 추진했다. 신문법은 2005년 1월 1일 국회를 통과했는데, 그 핵심은 편집권의 독립과 신문지원 제도의 도입에 있었다.


그러나 편집권 독립의 핵심인 편집규약 제정 및 편집위원회 설치는 입법논의 과정에서 임의조항으로 약화됐다. 또한, 건전한 군소 지역⋅전문 매체를 지원하기 위한 신문발전위원회와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각각 250억원의 기금을 토대로 2006년 1월부터 본격 사업에 들어갔으나, 자율성의 부족과 예산운용의 제약 등 한계로 그 기능이 불완전했다. 신문공동배달센터를 통해 신문배달비용을 줄이고 국민의 매체선택권을 제고하고자 하는 신문유통원 사업은 비교적 성과적이었지만, 다른 핵심개혁들의 부진으로 인해 함께 빛을 잃었다.


 


4-3. 또 다른 기회 : 인터넷 공론장의 출현


김대중 정부는 우리 사회의 정보화를 핵심과제로 채택해, 2000년 말 전국 주요 거점도시를 광케이블로 연결하는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을 완성했다. 이후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초고속 인터넷의 이용자가 될 수 있었고, 양방향과 참여를 특성으로 하는 ‘인터넷 공론장’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공론장은 소수 거대언론에 집중된 사회적 의제설정력을 분산시키고, 다양한 계층의 처지와 시각을 노출시키고, 쌍방향 네트워크적으로 교류하게 함으로써, 여론다양성을 제고하고 시민참여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다.


 


4-4. 민주정부의 한계와 국민의 또 다른 선택


김대중 정부는 민주당이 자칭 ‘원조보수’인 자민련과 합작한 ‘DJP연합’으로 집권에 성공한 일종의 ‘소연정’ 정권이었다. 문자 그대로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는 공론장’을 만드는 일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언론개혁의 숙명이자 한계이기도 했다. 그 숙명과 한계는 노무현 정부에게도 계승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당 단독으로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경우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야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게 ‘대연정’을 제안했고, 민망하게도 거절당했다.


그렇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는 공론장(또는 언론체계)’은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를 거치면서 꿈 또는 희망의 영역에서 현실로 위치를 이동했다. 그에 따른 일련의 언론개혁은 일정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이제 불가역적인 성취로 여겨지기도 했고, 그 이전의 개발독재의 구권위주의 언론과 그 뒤를 이은 민주를 가장한 기만적 신권위주의 언론은 더 이상 복구될 수 없다고 믿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슬로건을 내건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고, 이명박 정부의 공영 미디어 장악과 통제 및 광범한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 탄압과 인터넷 공론장에 대한 정권의 저열한 정치공작적 동원에서 보듯 ‘저열하고 비열한 권위주의의 막무가내식 역습’을 목도하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야당이던 당시부터 재집권에 성공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우리나라 공영 미디어들이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 시기 동안 반미종북의 여론조작과 선동을 일삼으며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했다’고 주장해 왔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가 추진한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는 공론장’ 만들기는 꽤 성과적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파괴로 의심하는 수구보수 정권의 등장과 함께 그것은 붕괴되고 대체되는 수순에 들어서게 된다.


 


5-1. 물꼬 트인 파시즘으로의 퇴행


이명박 정부는 감사원·검찰·국세청·교육부·방통위·공영방송 이사회 등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하는 국가기구와 공공기구를 동원해 KBS, MBC, 연합뉴스, YTN 등 공영 미디어들을 부당불법하게 장악했다. 이로 인해, 민주적 여론형성과 국민의 알권리를 사명으로 하는 공영 미디어들은 정권 등 기득권 층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고, 매우 불공정한 정권의 홍보도구로 돌변했다. 많은 언론인들이 파업 등의 방법으로 이에 항의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1975년과 1980년 언론인 대학살과 유사한 해고 16명 등 440명의 대규모 징계였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 언론장악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신재민 문광부 차관은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법으로 규율하거나 정립할 사안이 아니며, 통제나 간섭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신재민 차관은 2008년 5월 9일 정부 관계자들이 모인 언론대책회의에서 “인터넷 상의 각 부처 관련 이슈를 모니터 및 신속 보고하고,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진원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리”할 것을 주문한 것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또한, 2008년 11월 14일에는 YTN노조의 구본홍 신임사장 임명 반대투쟁에 대해 “일반 기업이라면 노조원들은 열흘 만에 잘릴 일인데 언론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더 오래 버티고 있는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왼쪽으로 치우친) 방송을 가운데 갖다 놓으라”고 말했다고 발언해 정부의 언론장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한편, 이명박 정부의 언론관은 핵심 실세의 개인적 인터뷰 형식을 빌어 핵심적으로 표명된 바 있다. 2008년 8월 박재완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KBS는 정부 산하기관... 사장은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책기조를 구현할 인물이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발언은 당시 벌어졌던 정부의 언론장악 논리를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 준다.


 


5-2. 공영 미디어 장악과 도구화


이명박 정부의 KBS·MBC·YTN·연합뉴스 등 공영 미디어 장악은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의 수순을 밟으며 진행되었다. 첫째 낙하산 사장 투입, 둘째 친정부 편파방송을 함께 도모할 간부인사 단행, 셋째 노조원 등 비판적인 사내구성원들에 대한 탄압과 징계, 넷째 정부에 대한 비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의 폐지 또는 축소, 다섯째 친정부 홍보프로그램 편성과 실행의 일상화가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감사원·검찰·국세청·교육부·방통위·공영방송 이사회 등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하는 국가기구와 공공기구를 동원해 KBS·MBC·연합뉴스·YTN 등 공영 미디어들을 부당불법하게 장악했다. 이로 인해, 민주적 여론형성과 국민의 알권리를 사명으로 하는 공영 미디어들은 정권 등 기득권 층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고, 매우 불공정한 정권의 홍보도구로 돌변했다.


이들 공영 미디어들에서 저널리즘 본연의 임무인 정부여당 등 거대권력 감시와 여론다양성 구현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과 사회비판 프로그램은 모두 배제됐고, 그 자리는 정권 홍보와 호위에 협력하는 사람들과 비판을 빙자한 탈정치적이고 친정부여당적인 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 이들 공영 미디어들은 정권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민의 의식을 조작·동원하는 흉기로 악용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공영 미디어들에서, 정권에 유리한 의제와 프레임 발굴에 앞장서고, 정권에 불리한 사건은 외면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비틀어버리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민주정부 시절 자율성과 독립성을 구가하며 국민으로부터 얻었던 높은 신뢰도와 공정성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들 공영 미디어들은 말로만 공영일 뿐 주권자인 국민을 호도하고 우롱하는 가장 천박한 관영 미디어로 전락했다.


 


5-3. 방송구조 개악과 인터넷 공론장 억압 및 정치적 동원


이명박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언론구조 자체까지 개악했다. 글로벌 미디어를 육성하고 고용을 창출한다는 허황된 슬로건을 내걸고,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방송 소유를 허용하고, 광고시장의 한계를 넘어서서 조선·중앙·동아·매경 등 신문에게 종합편성 PP를 신규 허가했다. 이로써, 한편으로는 보수 기득권층의 여론지배와 여론독과점이 더욱 심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사들은 정부와 대자본의 차별적 시혜 없이는 정상경영이 어려운 좋지 않은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정치적으로 검열의 도구로 악용해, 방송과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탄압하고 축소시켰다. 나아가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국정원과 군 사이버수사대 등이 일베 등 인터넷 공간을 통해 대대적으로 불법선거운동을 벌인 점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데서 보듯, 이명박 정부는 자유로운 인터넷 공론장을 억압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것을 정부가 주도하는 불법선거운동의 공간으로 적극 타락시키고 악용해 왔다.


 


5-4.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도구화 노선과 그 전리품을 계승한 박근혜 정부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7월 대선후보출마 기자회견에서 MBC파업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방송 언론의 공정성은 확보돼야 하고, 독립성이나 자율성도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대통령선거공약집 287쪽에서 “방송은 공공성을 지닌 미디어이나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정치적 영향력 행사로 독립성, 중립성 침해 논란(이) 발생”했다고 현실을 진단하고, 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회복하고 개선하기 위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289쪽에서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해 “통신심의의 남발과 인터넷포털사의 임시조치 남용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위축”을 지적하고, “통신심의를 대폭 축소하고, 임시조치 제도를 개선하여 정보 게재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선 승리 이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 약속들이 애초에 그런 공약이 없었던 듯 일절 외면과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금까지 행태는 ‘고의부도 약속어음’ 형이다. ‘지난 정권 발생한 방송공정성의 훼손과 인터넷 언론자유의 축소를 시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지만, 대통령 본인과 새누리당은 그 약속을 일절 외면하는 한편, 이명박 정부의 공영 미디어 장악과 홍보도구화를 계승·확대해 왔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ICT 관련 정부기능을 신설 미래창조과학부로 통합하고, 그 안에 전담차관제를 두어 ICT산업의 견인차인 방송영상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취지의 정부조직개편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 주된 정책수단은 방송의 사영화와 상업주의화(정부여당의 논리는 ‘방송에 대한 사적 자본의 주도권을 확대하고 공적 규제를 축소하면, 방송사들이 시청자의 기대와 욕구에 경쟁적으로 더 잘 부응하게 되어 시청자의 복지와 선택권이 향상되고, 방송사들과 관련 업체들도 점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어, 국가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생활도 향상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였고, 이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근본적으로 더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었다.


야당은 그러한 위험을 내포한 개편안에 찬성할 수 없었다. 새누리당은 야당과 국민에게 방송공정성 회복⋅보장 장치를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뒤,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켰다. 그 후, 정부⋅여당은 특위를 공전시켜 그 약속을 사실상 고의 파기한 상황이다(여야는 금년 3월 여당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야당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해직 언론인 원상회복 △방송 지배구조 개선 △제작·편성 자율성 보장 등을 논의해 개선안을 마련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특위를 6개월 한시조직으로 출범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 새누리당은 특위를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소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이견을 핑계로 3개월 가까이 공전시켰고, 어렵게 열린 공청회와 소위원회 회의 등에도 대부분 불출석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9월 말 종료시점이 다가오면서 새누리당과 특위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해지자, 여야는 특위 활동시간을 11월 말까지로 2개월 연장했다. 2개월 연장을 결정한 특위 전체회의에서 나온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의 발언은 “현행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다”, “현행 유지가 당의 입장이다”로 요약된다. 일부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은 활동시한 연장을 위한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6개월간 보인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의 행태와 발언, 박근혜 정권에 의한 방송장악의 고착화와 방송의 정권홍보 도구화, 방송 사영화와 상업주의화의 집요한 추진 등 그간의 추세로 볼 때, 정부와 새누리당은 여야가 합의한 특위의 임무를 이행할 의사가 처음부터 없었으며, 두 달 시한이 연장된 특위에서도 그 임무에 충실할 의사가 전무하다는 점 역시 명확하다.).


정부여당은 그렇게 통과시킨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연장선에서 직접사용채널을 통한 통신재벌의 유사종편 진입 가능성 개방, 유료방송 중심의 UHDTV 발전 로드맵 수립, 주파수 재벌 매각, 700MHz 대역 방송용 주파수의 통신용 할당 추진, 유료방송의 8VSB 허용 등 비지상파방송과 통신 등을 통한 유사방송에 대한 대기업의 지배확대와 규제완화를 추진했거나 추진중에 있다. 이는 공적 책무의 법률적 담지자인 지상파방송의 영역과 자원을 대기업이 지배하는 비지상파와 유사방송에게 지속적으로 넘겨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6-1. 한국형 파시스트 시대의 개막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는 ‘보통사람’ 또는 ‘문민시대’를 운위하며 민주주의를 표방했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권경언 수평유착의 신종 권위주의를 추구했다.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는 공론장’ 또는 단순히 ‘민주적 공론장’은 그럴싸한 구호로만 존재했고, 국민은 그러한 일종의 양두구육에 기만당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당시의 보수-수구 세력을 포괄하는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는 공론장’ 건설을 현실의 개혁과제로 추진했다. 그 결과 우리 국민과 언론인들은 ‘민주적 공론장’을 일정 수준 보장하는 제도와 현상의 일단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좌익종북 세력의 체제파괴 책동’으로 호도하고, 언론을 권력의 도구 또는 전리품으로 취급하는 보수-수구 세력이 집권하면서 사정이 변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하에서 공영 미디어들은 정부에 인위적으로 장악되고 통제되었고, 정권의 홍보도구로 동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며 해의 존재를 당당히 부인하는 것처럼,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낙하산 사장 투하를 통한 정부의 언론 장악과 동원 자체를 당당하게 부인한다. 자신들에게 불법혐의가 없음을 외치고,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서는 ‘반국가-반체제 질서파괴범’의 딱지를 마구 갖다 붙인다.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는 공론장’ 따위는 안중에 없다. 권경언 삼대 기득권 세력이 수평유착하여 과거 독재시절의 흑백논리식 마녀사냥을 공공연히 제창하는 한국형 파시스트 시대가 지금 열리고 있는 중이다.


 


6-2. 우리의 미래는? 민주적 공론장의 가능성은?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보듯, ‘민주적 공론장’은 우리 정치지형에서 여야 각 정치세력의 대화와 타협만으로는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는 공론장’, ‘민주언론’은 가능한 일일까?


우리 사회에서 1987년 6월항쟁 이후 크게 변한 것, 돌이키기 어렵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국민 다수가 적어도,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만큼은 포기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는 점이다. 여성, 호남, 이주민 비하와 공격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 일탈의 공간인 ‘일베’가 정권의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한 정치공작으로 급성장하여 하루 평균 32만명이 접속하는 거대 극우정치 공간으로 우뚝 서 있다하더라도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기죽거나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는 공론장’에 대한 희망의 불씨와 동력은 그 이상의 힘으로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앞에는 가치와 비전이 다른 세 가지 세력이 경합하고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요구하는 ‘민주투사’들이다. 그 반대편에 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를 국가파괴의 좌익책략으로 의심하고 애국을 강조하는 ‘원조보수’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 가운데서 시장의 효율과 개인의 창의를 중요시하며 그 둘 중 누가 더 자신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지 타산하는 ‘시장의 사업가’들이다. ‘민주투사’와 ‘원조보수’ 그리고 ‘시장의 사업가’ 들은 국민에게 어떤 비전, 어떤 정치력을 보여줄지, 우리 국민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또 다른 역동적인 우리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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